[김희경기자의시네닷컴]삶의 용기 준 '박하사탕'

  • 입력 2000년 6월 1일 19시 36분


최근 영화 '박하사탕'의 비디오 출시사가 주최한 감상문 공모전 심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스스로도 민망한 경험을 밝히는 이유는 공모전 응모작들을 읽으며 '박하사탕'이 남긴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타락하고 위악으로 자신을 망친 한 중년 남자의 20년 전 순수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그린 '박하사탕'은 객관적인 거리를 두기 어려운 영화다. 극장에서 세 번을 보며 세 번 모두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이 영화는,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많은 일들과 지금의 삶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1980년 5월 광주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을 '그들의 역사'라고 생각할 20대에겐 이 영화가 낯설 거라고 생각했다. 한때 '박하사탕'에'386 영화'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별칭도 따라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응모작들을 읽으면서는 그런 느낌이 '체험한 자만이 그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식의 오만같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대들 "80년대 아픔 일부 공감"▼

응모작의 대다수를 차지한 20대 관객들의 글에서는 1980년 광주, 암울했던 80년대에 대한 주인공의 기억을 공유하지는 못하더라도 '박하사탕'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 흔적이 보였다. 사실 주인공이 감당하지 못했던 '역사'와 누구나 조금씩 꿈을 잃어버리는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일상'이 크게 다르겠는가. 한 관객의 말마따나 '살아가기로 작정한 그 순간부터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기차를 탔는지도' 모른다.

▼"고통스런 과거 통해 미래희망 엿봐"▼

그러나 인상적인 것은 영화를 자신의 삶속에 끌어들여 고통스럽게 반추하는 관객들의 글에서 역설적이게도 희망이 보인다는 점이다.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세상과 '우리를 절망시키는 우리들'을 아파하던 한 20대는 과거의 힘보다 미래의 힘이 더 강하다는 믿음을 놓지 말자고 다짐한다. 또 '상처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하고 스스로 위로하던 한 주부는 평범한 이웃 속에서 영화속 주인공의 모습을 발견하고 '살아있어 주어서 그가 아름답다'는 인식으로까지 생각의 지평을 넓힌다.

'박하사탕'을 보며 잃어버린 순수함을 그리워하든, 삶의 누추함에 슬퍼하든 그건 보는 이의 몫일 터이다. 그러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자신을 정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박하사탕'은 어느 지점에 놓여있는 누구에게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말처럼 "현재적 의미를 지니는 과거"란, 영화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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