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핫라인]유지태/낮은 목소리속에 숨겨진 열정

  • 입력 2000년 5월 28일 20시 36분


지난 주말 개봉된 판타지 멜로영화 ‘동감’의 주연 유지태(24)는 ‘N세대 스타’답게 발랄하고 가벼울 거라는 예상을 확 깬다. 팬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순한 ‘초식 공룡’같다. 큰 체격(키 186㎝)에 비해 작은 얼굴, 웃을 때 더없이 착해지는 표정, 느린 걸음걸이. 목소리와 말투도 ‘동감’에서 그가 맡은 발랄한 대학생 역할과 달리 나지막하고 조용조용하다.

질문을 하면 느리게 입을 떼는 그에게 원래 그렇게 말수가 적냐고 물으니 엉뚱하게도 “지금보다 더 줄여야 된다고 생각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말이란 게, 하는 동시에 ‘이걸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근데 못그러는 경우가 많으니까 더 신중해져야 하지 않나….”

‘동감’은 ‘바이준’(1998년)‘주유소 습격사건’(1999년)에 이은 그의 세번째 영화. 연기경력이 짧지만 유지태는 요즘 최고의 인기스타다. 얼마전 영화배우 인기도를 주식거래 방식으로 알아보는 인터넷 홈페이지 ‘씨네스탁’에서 부동의 1위였던 한석규를 누르고 최고 인기주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줬더니 “정말요?”를 연발하며 그 유명한 ‘천리안 웃음’을 짓는다. 착하고 어리숙해 보이고, 전혀 ‘마초’같지 않은 그 웃음이 그를 벼락스타로 만든 인기의 비결 아닐까.

‘동감’에서는 연기의 어색함을 꽤 벗어났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연기가 불만이란다. “몸짓도 어색하고, ‘오버’한 것도 많이 보이고, 발음도 이상하고….”

디귿과 지읒 발음이 잘 안돼 얼굴 X레이까지 찍어봤는데 턱 구조가 남들과 달라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고. “발음이나 동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맡은 역할에 얼마나 솔직한가”인데 그 점에 대해선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다”는 자평이다.

유지태에게 연기는 콤플렉스와의 싸움이다. 대학(단국대 연극영화과) 1학년때 오른 첫 무대에서 “잘하기보다 못하기가 더 어려울만큼 좋은 캐릭터”를 맡아, 완전히 망쳐버렸다.

“요즘은 ‘기어다니던 애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쯤에 와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요. 삶에서 뭔가가 우러나오는 연기는 서른 이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제가 연기자로 가장 마지막에 해보고 싶은 건, 저속하지 않게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 연기예요.”

그는 꽤 진지하다. 한참 생각한 뒤 “아니,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네요”라고 자기 말을 고쳐가며 정확하게 말하려 애를 쓴다. 수줍고 생각 많은 청년같은 그가 스타가 된 기분은 어떨까? “좋죠. 근데 요즘이 제게 가장 위험한 때라고 생각해요. 절대로 현재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 많이 해요.”

촬영이 없을 땐 뭐 하냐는 질문에 그는 뜬금없이 “뜨개질 해요”라고 대답했다.

“단편영화 만들어보려고 준비중인데, 어머니가 애정을 듬뿍 담아 아들에게 줄 스웨터를 꼼꼼하게 뜨개질하듯, 그렇게 만들고 싶어요. 에이, 뭐 별 건 아니고….”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 그의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우리 구내식당에 가면 금방 밥 먹을 수 있는데” 했더니 “같이 가죠, 뭐” 하며 느릿느릿 따라온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출현에 식당은 벌집을 쑤신 것처럼 난리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한 표정이던 그가 식사 후 허공을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이렇게 다니다 보면요. 목 위로만 살아있는 것 같아요. 맨날 차 타고 왔다갔다 하고, 얼굴이 나를 대표하니까, 목 아래로는 죽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짧은 시간에 유명해졌지만, 경박하지 않은 이 젊은 스타가 갑자기 안쓰러워졌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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