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Politics]청바지 차림 부통령 부인

  • 입력 2000년 5월 21일 20시 03분


◆Politics

지난주에 총기 규제를 위해 열린 100만 어머니들의 행진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가벼운 바지 정장을 입고 밀짚모자를 쓴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반면 앨 고어 부통령의 부인인 티퍼 고어는 하얀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수행원도 없이 다른 여성들과 팔짱을 끼고 행진했다.

물론 힐러리는 대통령 부인이며, 상원의원 후보이고, 국제적인 명사이다. 그러나 이날 힐러리와 티퍼가 보여준 행동은 자신들의 공적인 역할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매우 대조적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부드러운 여인'티퍼 고어▼

힐러리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개인적인 사생활이 거의 없는 공적인 생활에 뛰어들었다. 반면 티퍼는 자신의 공적인 역할이 별로 마음 내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지금까지 20여년 이상을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왔기 때문에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 자신의 인생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생각할 기회가 많았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나한테는 그것이 완전히 낯선 영역"이라고 말했다.

고어 부통령의 선거 보좌관들은 티퍼가 대통령 선거운동이 자신의 가족 생활을 집어삼켜 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올해 26세인 그녀의 딸 카레나 고어 시프가 대중 앞에서 더 편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카레나는 현재 고어의 선거운동에서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티퍼가 공적인 생활에 대해 이처럼 유보적인 감정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에 성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의 록음악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그녀는 음반 업계의 많은 사람들과 적이 되었고 음악인인 프랭크 자파는 그녀를 가리켜 '문화적 테러리스트'라며 그녀의 활동을 '주부의 취미생활'로 격하시켰다.

그러나 티퍼가 아무리 자신의 사생활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공적인 생활을 피할 수는 없다.

▼동성애자 집회서 드럼 연주도▼

예를 들어 이달 초에 그녀는 워싱턴에 있는 로버트 F 케네디 스타디움의 무대에 나타나 4만5000명의 관중 앞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이 날의 콘서트는 동성애자 권리를 위한 시위의 전야행사였다. 그녀는 자신이 이날 무대에 나타난 것에 대해 “나는 그것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들의 대의에 공감했다. 그리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행사는 선거운동을 즐겁게 하자는 내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현재 선거운동을 얼마나 즐겁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녀의 역할 역시 분명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남편과 따로 행동하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으며 대개 정책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고어 진영의 선거 자문역들은 그녀가 딱딱한 것으로 유명한 부통령에게 매우 필요한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모양처型'대선에 되레 도움▼

그녀는 젊은이들과 대화를 자주 갖는다. 지난해에 그녀 자신이 우울증에 시달렸음을 이미 공개했기 때문에 그녀와 젊은이들의 대화는 흔히 10대들의 생활의 어두운 면까지도 포함한다. 최근 버지니아주에서는 동성애자들의 부모들을 상대로 연설하면서 부드럽고 머뭇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티퍼는 매일 같이 열리는 선거운동 전략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어 부통령의 선거 보좌관들은 그녀를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고어 부통령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에게 가족의 중요한 일들을 알려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그녀의 행동을 보면 그녀는 대통령 영부인이 되더라도 힐러리 클린턴보다 더 전통적인 역할에 만족할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지난해에 AP통신과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넷이나 되고 연로하신 부모님도 계시기 때문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다. 대신 나는 가족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http://www.nytimes.com/library/politics/camp/051900wh-dem-tipp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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