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고수들의 천적관계]中 마샤오춘 '이창호 콤플렉스'

  • 입력 2000년 5월 9일 19시 38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반상에서 벌어지는 ‘천적(天敵)’ 얘기다.

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4회 잉창치(應昌期)배 이창호 9단과 일본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의 8강전은 두가지 면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 9단이 3회 대회 우승자인 유창혁 9단 등 한국 기사들이 모두 탈락한 가운데 패권을 차지할 수 있을지와 상대가 요다 9단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요다 9단이 누군가. ‘공인’된 이 9단의 천적이다. 이 9단은 91년 한일 신예 최강 대결 5번기 1승3패를 시작으로 역대 전적 2승7패를 기록했다. 이9단이 잉창치배 8강전에서 이겨 3승째를 올렸지만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다.

오죽하면 이 9단이 1월 제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서열을 무시하고 “요다와 맞붙게 해달라”고 요구 했을까. 하지만 요다 9단이 앞서 출전한 조훈현 9단에게 지는 바람에 이 9단과의 대결은 무산됐다.

세계 최강인 이 9단이 요다 9단에게 곧잘 물리는 이른바 ‘천적 관계’는 반상의 승부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변수.

이창호 유창혁 조훈현 서봉수 9단 등 이른바 4인방간에도 ‘물고 물리는’ 관계가 존재한다. 물론 이 9단은 나머지 세 기사에게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기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 9단은 유창혁(74승37패 승률 67%) 서봉수9단(46승16패 74%)을 압도했다. 하지만 스승인 조훈현 9단(153승103패 60%)은 좀 부담스럽다.

반면 유 9단은 조 9단(44승1무56패)을, 서 9단은 유 9단(22승27패)을 상대로 할 때 4인방간 대결에서 비교적 좋은 승률을 기록해 왔다.

한중일 고수들이 맞붙는 국제대회에서도 천적관계는 존재한다.

이 9단은 특히 ‘중국 기사 킬러’로 불릴 만하다. 마샤오춘(馬曉春·23승6패) 창하오(常昊·9승1패) 위빈(兪斌·4승1패) 9단 등 최근 위세를 떨치고 있는 중국 기사들은 이 9단을 만나면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꼬리를 내린다. 삼성화재배 LG배 등 세계 대회의 결승 때마다 이창호의 벽에 무릎을 꿇은 마 9단은 사석에서도 ‘이창호’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을 정도.

유 9단은 이 9단이 곤욕을 치르는 요다 9단에게 7승6패로 우세를 지키고 있다. 유 9단은 또 이 9단과의 대국에서 평균 승률이 33%에 불과하지만 국제기전에서만은 7승8패로 호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승부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묘한 것이다.

요즘 열리고 있는 유 9단과 위빈 9단의 제4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5번기. 유 9단이 역대전적에서 4승1패의 우위를 보였지만 결과는 거꾸로 위 9단이 2승1패로 앞서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월 최초의 여성 국수가 된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도 이창호(3승1패) 조훈현9단(2승1패)을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대국 수가 적어 천적이라는 표현은 어려워도 껄끄러운 상대인 것만은 틀림없다. 문용직 4단은 “천적 관계는 두 기사의 기풍과 누가 흑번을 잡느냐, 심리적 요인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형성된다”면서 “프로의 세계에서 ‘먹이 사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력 차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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