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교발전기금'의 변질

  • 입력 2000년 5월 8일 19시 47분


초중고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학교발전기금’ 제도가 시행 3년째로 접어들면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는데도 강제성 징수로 변질되고 있다는 보도다. 학부모들로서는 학교로부터 기부 요청을 받게 되면 안내자니 떨떠름하고, 내자니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다.

이 기금은 IMF체제 이후 학교운영 예산이 크게 쪼들리자 교육당국이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제도다. 학부모들에게 기부금을 거둬 학습기자재와 학교시설 확충 등에 사용하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교육예산의 부족한 부분을 학부모에게 떠넘긴다는 반대의견도 있었으나 워낙 각급 학교의 재정형편이 절박했던 때라 제도를 수용하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

하지만 최근 운영과정에서 불합리하고 매끄럽지 못한 점들이 드러나면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학교측이 학교발전기금을 내라는 통신문을 학부모들에게 직접 보내는 것은 자발적 모금원칙을 거스르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부금을 낼 수 없는 형편의 학부모들은 통신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을 갖게 될 게 뻔하다.

이보다 심한 것이 학교측이 학급별로 할당액수를 정하는 것과 정부예산으로 해야 할 사업까지 학교발전기금을 사용하는 것이다. 비록 일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지만 할당 액수를 정하는 것은 사실상 강제 징수에 해당된다. 마땅히 정부예산으로 해야할 사업을 학교발전기금으로 충당하는 것도 기금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

이런 식으로 기금을 조달하고 운영하려면 차라리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낫다. 지금은 이 제도가 도입됐을 당시인 IMF체제 직후와는 다른 상황이다. 그때보다 경제형편이 호전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작용을 줄일 뚜렷한 대책이 없다면 폐지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이에 대해 교육당국은 당장 교육재정이 확충될 가능성이 높지 않으므로 현실적으로 제도를 존속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철저한 관리와 제도 보완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나서야 한다.

학교발전기금의 문제점과 더불어 일부 지역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에 대한 촌지관행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은 학부모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촌지 문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교육을 뿌리째 썩게 하는 망국적인 행태다. 한동안 잠잠했던 촌지관행이 재현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교육당국은 이에 대해서도 감독의 눈길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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