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핫라인]장동건, '나만의 색깔찾기'위한 변신중

  • 입력 2000년 5월 7일 21시 43분


연기자의 실제 퍼스낼러티는 극 중 캐릭터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둘 사이의 공통부분이 커지면 더욱 유리하다. 그렇다면 요즘 영화 ‘아나키스트’와 MBC 수목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으로 영화와 방송을 넘다들고 있는 장동건은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그는 1992년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로 데뷔한 이후 지난해까지 자신의 퍼스낼러티를 제대로 출연작에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실제 장동건은 얼마 전까지 “과연 저 성격으로 어떻게 정글같은 연예계를 헤쳐갈 수 있을까?”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여리고 낯을 가리는 청년이었다. MBC의 한 예능PD는 불과 2년 전까지 “동건이는 저 성격 때문에 안된다”고 공언해왔다. 그가 1996년 잠시 연기활동을 접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닐 때 동료 학생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수업 도중 교실을 뛰쳐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대리석 외모’는 그의 ‘숫기 없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풋내기 시절 “미남스타가 나타났다”는 부추김에, 그리고 항상 스타 기근에 시달려온 방송가의 필요에 의해, 그는 ‘아이싱’ ‘모델’ ‘사랑’ ‘청춘’ ‘고스트’ 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극의 중심에 섰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없이 고민하고, 갑자기 초능력도 얻는, 그런 배역을 맡아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드라마나 영화를 남기지는 못했다. ‘사랑’은 낮은 시청률로 한 달 만에 작가가 교체됐고, ‘청춘’은 1주만에 표절 시비에 휘말려 조기 종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그의 연기를 지켜보면 서서히 ‘퍼스낼러티의 조율’에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우선 그는 많이 당당해졌다. “나약해 보이는 게 싫어 약간 몸을 불렸다”는 그는 “이제 누구 앞에서도 머뭇거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고 말한다.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담배도 더 피우고, 술도 많이 한다. 지난해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이후 붙은 자신감도 한 몫 했다.

게다가 영화 방송가에서 장동건에게서 더 이상 ‘트렌디 스타’의 이미지를 건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요즘 그의 극 중 캐릭터는 분명 바뀌었다. 최소한 ‘아나키스트’와 ‘이브의 모든 것’에서는 ‘왕자님’보다는 ‘허무주의자’에 가깝다. 특별한 목적없이 정신이 ‘몽롱한’것은 대동소이하지만, 이전의 ‘겉 멋’은 없어졌다.

겉으로는 트렌디 드라마를 표방한 ‘이브의…’에서도 그는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며, 아버지가 운영하는 방송국으로 입사하기 전까지 ‘내홍’(內訌)을 겪는다. 때문에 그는 이 드라마에서 사실 주연이 아니다. 연출자인 이진석PD는 “동건이를 대놓고 밀다간 이전처럼 왕자님으로 나오기 십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장동건은 요즘 대개의 연기자가 그렇듯, 드라마보다는 분명 영화가 더 좋다고 한다. 그는 “물론 수입 문제도 있지만, ‘벽돌공장’ 같은 TV 드라마에서는 나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사랑’에서 만났던 이진석PD와의 인연이 ‘이브의…’ 출연에 결정적”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앞으로는 될 수 있으면 TV 드라마는 하기 싫다고 말한다. 연예계 데뷔 8년만에 장동건이 밝힌 ‘방향 선회’가 어떻게 될지 관심거리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