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군]정재승/머피의 법칙…運과 무관

  • 입력 2000년 5월 5일 22시 31분


수퍼마켓에서 줄을 서면 꼭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든다. 중요한 일이 있을때는 꼭 버스를 놓친다. 소풍날엔 봄비가 내리고 수능시험 날에는 한파가 몰아친다.

“하필이면 이 때…”

이런 상황을 흔히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재수없는 법칙이다. 과연 그럴까. 영국 애쉬톤대학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로버트 메튜스 교수는 최근 머피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풀어내 관심을 끌고 있다.

우선 슈퍼마켓의 줄. 누구나 순간적인 관찰로 제일 짧은 줄을 찾아보지만 선택은 매번 실패로 끝난다. 메투스 교수는 이를 당연하다고 결론 짓는다. 수퍼마켓의 12개 계산대 가운데 내가 선 줄이 가장 먼저 줄어들 확률은 12분의 1.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12분의 11이다. 아주 운이 좋지 않다면, 어떤 줄을 선택하든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11배나 많은 것. 재수가 아니라 확률적으로 늦을 수밖에 없다.

일기예보도 마찬가지. 우연히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었다면 “난 오늘 무척 운이 좋다. 일기예보를 못 들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하며 우산을 챙긴다. 그러나 이런 날은 유난히 햇볕이 쨍쨍하다. 그것도 화가 날 정도로…. 더 억울한 것은 집에 도착하면 그제서야 비가 온다는 것. 일기예보의 정확도가 80%가 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날씨마저 나를 배신하는 걸까.

메튜스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더라도 우산은 안 가져가는 게 좋다. 일기예보의 정확도가 평균 80%가 넘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만일 기상청에 근무하는 기상통보관이 집에서 잠만 자며 1년 내내 무조건 ‘비가 안 온다’고 예보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경우 일기예보 정확도는 몇 퍼센트일까. 우리 나라의 경우 일 년 중에 비가 오는 날은 많아야 100일. 결국 아무런 계산없이 무조건 ‘비가 안 온다’고 우겨도 날씨를 맞출 확률은 무려 72.6%에 달한다.

세상에는 생각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 일이 안되면 우리는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며 ‘재수가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메튜스 교수는 그것이 재수의 문제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가 확률을 무시하고 너무 무리한 것을 바랬다는 것이다. 12개의 계산대 가운데 내줄만 먼저 줄기를 바라거나 변화무쌍한 날씨를 80% 이상 정확하게 맞추려는 것이 무리라는 이야기다. 머피의 법칙은 결국 자기 중심적으로 살지말라는 ‘생활의 지혜’인 셈이다.

▼필자약력▼ 한국과학기술원(KAIST)물리학 박사. '혼돈’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물리학의 새 분야인 카오스이론의 전문가로 꼽힌다. 97년 미국 의용(醫用)공학회로부터 최우수논문상 수상했으며 현재는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물리학자가 본 영화 이야기’를 통해 과학기술 대중화에 기여.

정재승박사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연구원) jsjeong@boreas.med.yale.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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