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래리 플린트

  • 입력 2000년 5월 3일 22시 10분


The People v. Larry Flint (1996)

감독: Milos Forman

출연: Woody Harrelson, Courtney Love, Edward Norton

"연방의회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하지 못한다." (헌법 수정 제 1조)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재미있는 일로, 그리고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이다." (래리 플린트)

1970년 중반 미국은 '섹스혁명'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지던 시기였다. 흔히 '진보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60년대의 시대정신의 불길이 미국 전역을 휩쓸던 시기다. 민권운동, 여성운동, 반전운동, 사법혁명, 학생운동 등 기존 체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각종 운동이 '혁명'의 이름으로 전국에 번지고 있었다. 그 '혁명'은 피를 동반한 것이 아니었다. 법원이 개혁의 이름으로 피의 혁명을 막은 것이다.

이러한 법의 혁명이라는 시대의 열기에 편승하여 '섹'와 '혁명'이라는 두 단어의 교접을 시도하고 있었다. 무릇 모든 혁명은 사람의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오하이오 주 신시네티 시의 한 싸구려 야간 업소의 주인은 미국인의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하면서 주류 사회의 도적적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장을 던졌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는 도덕적 다수자의 총격을 받고 반신불수의 몸으로 휠체어 신세가 되었다. 또다시 10년, 연방대법원은 미국이 관용의 사회이고, 망나니 무뢰한도 섹스와 언론의 자유를 향유한다고 선언했다.

래리 플린트, 그는 정직한 욕망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성인 잡지 허슬러의 발행인으로 오래 전부터 세계인의 귀에 익은 미국인이다. 영화 <래리 플린트>는 이 정직한 무뢰한의 일대기다. 원제목은 미국의 형사사건의 이름을 붙이는 예에 따라 "국민 대 플린트", 즉 미국 국민의 이름으로 플린트의 죄과에 대해 심판하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영화의 성격과 내용을 전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제목이다.

몇 차례의 소송을 통해 래리의 죄과에 대한 엇갈린 주장이 공방을 펼친다. 법정모욕죄와 신체 구금을 감수하면서 소송의 과정에서 플린트가 보인, 모든 의미에서 상궤를 벗어난 기이한 행동도 다수자의 법, 다수자의 윤리에 대한 반항과 조소의 극적인 예이다. 플린트의 지론인즉 소위 교양이나 문화의 정체는 위선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성인잡지 Playboy나 Penthouse가 도화 사이에 굳이 글을 섞어 넣는 것은 구역질 나는 지식인의 얄팍한 위장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직한 욕망을 정면으로 채워주는 정직한 상술, 이 점은 영화의 시작 장면부터 명확하게 제시된다. 1952년 켄터키 주의 오지, 진흙 뒤범벅인 산골길을 두 어린 소년이 리어카를 끌거니 밀거니 하면서 나무통을 운반한다. 행색은 북한 '꽃제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말이 아니다. 힘들여 운반한 밀주를 움막을 치고 사는 주정뱅이 노인에게 판다. 한 모금 시음한 밀주 맛에 만족한 노인은 허리춤에 감추어둔 꼬깃꼬깃 접은 링컨 초상화를 한장 씩 펴서 건네준다. "1달러," "2 달러." 만족한 예비 비행소년들의 입이 찢어진다. 쓰러져 가는 자신들의 집에 돌아온 아이들을 기다리는 슬픈 소식은 팔려고 비축해 둔 술을 아버지가 마셔버렸

다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대들며 방망이로 폭행하는 패륜아, 그러면서 형은 맹세한다. "나는 정직하게 돈을 벌겠다."

영화는 20년 후 '오하이오 주 신시네티 시 ' 라는 자막과 함께 반라의 댄서가 서툰 동작으로 하반신을 흔들어 대는 밤업소를 비친다. 널찍한 풀 당구대가 왠지 허망해 보인다. 전형적인 미국 지방도시의 밤업소 풍경이다. 한 사내의 둔중한 손이 댄서의 아랫도리에 지폐를 구겨 넣는 장면을 보여준다. '허슬러 고고클럽'이라는 간판이 스치듯 지나간다.

정직한 욕망을 채워주면서 정직한 돈벌이를 하겠다는 래리는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릴게 아니라 목마른 손님에게 정직한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다. 잡지의 창간이다. 이름하여 "허슬러 뉴스레터."

자료를 건네 받은 인쇄소의 늙은 주인은 난색을 표명한다. "글을 섞어야 법에 걸리지 않소. 플레이보이를 보시오." 래리의 반론은 명쾌하다. "플레이보이는 정직하지 않아요. 그건 사기요. 성기에도 얼굴처럼 인격이 있는 것이요."

첫 시도는 무참한 실패다. 냉랭한 세상의 반응에 위축되어 있는 래리에게 뜻밖에 날아든 낭보는 재키 오나시스의 나체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는 전문 파파로치의 전갈이다. 절정기에 한 무뢰한의 흉탄에 쓰러진 미국의 우상, 존 케네디 대통령의 부, "남편의 피묻는 머리를 끌어안고 "오, 노!" 절규하던 미인. 그 검고 큰 두 눈에 고인 물방울 진주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의 품에 255개 조항의 혼인계약서를 들고 안긴 여자, 미국인은 누구나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싶은 욕망이 있다.

성공은 보장된 것이다. 미국 전역의 그로서리 판매대를 통해 긁어모은 돈으로 졸지에 래리는 24개의 방이 달린 집의 소유자가 된다. 졸부의 이미지에 걸맞게 값비싼, 그러나 결코 교양과 문화의 냄새가 전혀 없는 가구더미의 집은 마치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허벅지의 율동과 거드름이 생전 모습대로 보존된 그의 유택(幽宅), 그레이스랜드(Graceland)를 연상시킨다.

"끝내주게 잘 돌리는" 댄서 출신의 동거녀 알시아는 결혼을 원한다. "결혼의 순간부터 인간은 소유권을 생각하게 되는 거야. 나는 그게 별로 내키지 않아." 래리의 정직한 반응에는 제도에 대한 허무적 냉소가 번뜩인다. 결코 일부일처제의 의무와 관행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알시아의 맹약을 듣고서야 래리는 정식 결혼에 들어간다.

길고 긴 래리의 법정사는 1977년에 개막된다. 신시네티 경찰은 '음란물 제작 반포죄'로 래리를 체포한다. 체포와 동시에 후일 평생토록 '친구'가 된 27세의 청년, 하버드 출신 민권연맹 소속 변호사 알란 아이작먼이 등장한다.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래리는 그야말로 자신이 자부하는 대로 가장 이상적인 고객이다. "부자에다 항상 사고를 저지르는" 말썽꾼이니 말이다.

그러나 70년대 미국의 많은 젊은 법률가가 그랬듯이 알란은 법률가로서 스스로의 이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래리가 하는 일은 자신의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미국은 국민의 이상한 취향도 "선택할 권리"로서 보장해 주는 성숙한 자유의 사회이며 헌법은 이러한 자유의 문서라는 것이 알란의 소신이었다. 검열제도는 도덕을 빙자한 사기라는 의뢰인의 뒤틀린 철학을 헌법이라는 지고한 경전이 표방하는 중립의 원칙으로 담아야 하는 변호사의 역할은 몹시도 중요하다.

사건이 제소된 신시네티 소재 오하이오 주법원은 노골적인 편견과 보수성을 드러낸다. 배심의 유죄평결을 기다렸다는 듯이 판사는 '망나니'를 25년의 징역에 처한다. (이 극보수의 판사 역으로 래리 플린트 자신이 분(扮)하였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인 법제도의 아이러니의 극치이다.)

5개월 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된 플린트는 이제 '자유언론운동'의 영웅으로 부각된다. "살인은 불법인데도 살인의 장면을 보도하면 특종이 된다. 그런데 섹스는 합법인데 섹스의 장면을 보도하면 불법이 되는 기이한 법의 논리는 사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상식의 범주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래리의 기상천외의 논리는 그의 불안정한 성격과 함께 취재 가치를 배가시킨다. 어느 틈엔가 래리는 그야말로 법적으로 특별한 취급을 받는 '공적 인물'(public figure)의 범주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신시네티의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해서 미국의 모든 지역의 경찰과 법원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음란이란 법적으로 '지역적'인 개념이다. 지역마다 윤리관이 다르듯이 음란성을 재는 잣대도 다른 것이다. 따라서 같은 잡지의 같은 호수라도 배포된 지역에 따라 유죄가 될 수도, 무죄가 될 수도 있다. 음란물을 전혀 규제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지만 그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50개 주로 구성된 미합중국은 사실상 50개 국가나 마찬가지이다. 주마다 성적 표현에 대한 관념이 다르고, 같은 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음란물을 보는 시각과 기준이 다르다.

전통적 가치관, 경건한 가족 중심의 보수의 정서가 강한 '극남지역(Deep South)' 조지아의 도시에서 허슬러의 판매가 문제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다. 잡지를 판매하는 소매상이 판매대에서 잡지를 거두라는 압력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한 래리는 비행기로 날아가서 직접 판매를 주도하여 경찰의 체포를 유도한다.

이제 래리는 명실공히 자유로운 성을 위한 투사가 된 것이다. 래리의 소영웅심은 한 여자전도사의 만남으로 절정을 맞는다. 노스 캐롤라니아의 루스 카터, 그녀는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의 친누이다. "교회는 단지 제도와 의식일 뿐이고 신에 대한 사랑은 교회와는 무관한 것이다"는 루스의 주장이다. 루스 자신이 "영혼의 상처를 해방"시키는 전도사이듯이 래리도 "성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투사라는 부추김에 둘은 동업자가 된다.

루스는 "성은 신의 선물이다" 라는 계시를 유도하여 래리에게 세례를 준다. 세례를 받고 이단적 광신자가 된 래리는 성경을 음란의 측면에서 해석하여 잡지에 게재하는 시도를 하는 등 종교와 포로노의 교접이라는 기상천외의 발상을 실천에 옮긴다. 이런 신성모독적 행위를 조지아 법이 건전한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제재를 가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경미한 죄로 기소하겠다는 검찰의 협상 제의(Plea bargain)를 거절하고 래리는 법정에 선다. 1978년 조지아 주 법정에 온갖 모욕을 주고 문을 나선 래리는 변호사와 함께 테러범의 저격을 받는다. 하반신 불구로 평생을 휠체어에 앉게 된 래리, 그렇게 숭상하던 정직한 섹스의 심벌이 사라지자 이제 "신은 없다"라고 선언한다.

내게 성이라는 은총을 내린 신이라면 어찌 내게서 성의 능력을 뺏어갈 수가 있겠는가 라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좌절한 래리는 거소를 옮길 것을 결심한다.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는 중서부 땅을 떠나 할리우드로 이사하여 삼엄한 경비 속에 마약으로 고통와 인내의 세월을 보낸다. 몸이 망가지고 눈이 풀린 상태에서 알시아와 환각의 섹스로 보낸 나날을 계산하듯 캘린더가 5년의 세월을 어지럽게 돌린다.

수술 후에 마약을 끊겠다고 선언한 래리, 이미 중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아내의 의구심을 뒤로하고 래리는 경영일선에 복귀할 것을 선언한다. 복귀 후에 다시 '래리식' 경영을 주도하던 허슬러 발행인은 또다시 법정에 선다. 이번에는 연방사건이다. FBI의 수사방법의 도덕성 문제를 싸고 미국 전역을 시끄럽게 했던 '존 들로리언' 사건에 관련된 것이다.

함정수사 끝에 불법마약 거래 장면을 FBI가 덮치는 장면이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는데 바로 그 비데오 테입을 제공한 사람이 래리 플린트였던 것이다.

연방범죄수사국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사건이다. 함정수사 시비보다도 테입이 유출되었다는 사실이 수사기관의 자존심과 신뢰에 중대한 상처를 주는 것이다. 연방의 법정에서도 래리의 비정상적인 행각은 계속된다. 진실을 증언할 선서를 거부하면서 그 이유는 "주님은 없기 때문에"라고 비아냥거린다. 테입의 입수경위를 공개하기를 거부하면서 엉뚱하게도 국회의원의 섹스 파티 이야기를 꺼집어낸다.

"씹할놈의 법원"(Fuck This Court)이란 글자가 쓰인 티 셔츠도 모자라 국기로 만든 팬티를 내어 보인다. 법정모욕죄(contempt of the court)로 거주지 제한 명령을 받고도 이를 무

시하고 유유히 여행하다 보석불허 조건에 15개월 정신병원 감금의 선고를 받기도 한다. 래리의 행위는 연방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표출한 것이다.

래리 플린트가 시도한 최대의 도박은 당시 미국의 "도덕적 다수자"임을 자처하는 제리 폴웰(Jerry Falwell)목사를 상대로 도덕적 전쟁을 선포한 일이다. 폴웰 목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통적 도덕의 수호자였다. 활발한 텔레비젼 설교를 통해 전통 도덕의 부활운동을 벌이고 있는 명사 중의 명사였다. 래리가 보기에 그는 인간의 정직한 욕망을 허위로 포장하는 위선자에 불과했다.

허슬러잡지에 캄파리 광고가 실린다. "제리 폴웰, 첫 경험 고백"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 실제의 광고는 인터뷰 형식을 통해 명사들이 캄파리를 마신 첫 경험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강장제의 탁월한 효능을 암시할 의도임을 추정할 수있다. 폴웰 목사의 첫 경험은 술이 취한 상태에서 정원의 가건물 속에서 어머니하고 섹스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에 작은 문구로 실제가 아님을 주지시키는 "픽션: 광고 패러디" 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개인의 "언론, 표현의 자유"가 지상의 금과옥조인 미국의 법제 아래서는 공무원이나 사회적 명사는 일반인 에 비해 명예훼손(libel)의 피해자가 되기 힘들다. 공무원의 공적행위에 대한 비판은 사실과 달라도 악의가 없는 한 책임을 지울 수 없다.(New York Times v. Sullivan, 376 U. S. 254 1964). 그만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감시와 비판권을 보장하기 위한 배려이다. 법적 개념으로 "공적인물"(public figure)로 명명되는 사회 저명인사에게도 마찬가지의 기준이 적용된다. 영화배우, 운동선수, 가수와 같이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되기를 자원한 사람들은 그만큼 빗나간 언론의 화살을 각오해야 하는 유명세을 부담하는 것이다.

1984년 버지니아주 법원에서 "성직자 대 악마의 대결" 제 1회전이 열렸다. 폴웰 목사가 공적인물임을 쉽게 입증되었고 변호인의 변론대로 광고기사의 내용이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을 농담"이었음을 인정한 법원은 명예훼손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고의의 정신적 충격"(intentional infliction of emotional distress)이라는 개념의 불법행위를 인정하여 배상명령을 내렸다.

패소한 래리는 AIDS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신의 경고라는 폴웰 목사의 설교장면을 보고 연방대법원에 상고할 것을 결심한다. 그 역병(疫病)으로 죽은 아내를 위한 위령제이기도 하다. 자신도 "뭔가 뜻 있는 일을 하고 죽고 싶다"는 결심이기도 했다.

연방대법원에서의 논쟁은 보수철학과 윤리의 지적 대변인으로 널리 알려진 윌리엄 렌퀴스트 원장의 주재 아래 벌어진다. 도대체 술 광고에 공적 인물을 풍자해서 얻는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가? 일반인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법리 논쟁의 핵심이다. 종교지도자가 위선자라는 저급의 풍자, 인기 없는 발언도 미국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사상의 공개시장' 이론(marketplace of ideas), 음란성이란 개인적 기호의 문제이지(mater of taste) 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등등의 변호사의 변론의 요지를 충분히 반영한 판결문은 아홉 명 판사 전원의 뜻을 담아 렌퀴스트 원장이 직접 집필한 것이다.

"공공의 이해와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하기 위해 수정 제 1조와 제 14조는 공무원과 공적인 인물(public figure)이 자신을 풍자하는 만화광고를 이유로 고의의 불법행위의 책임을 부과하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한다."(Hustler Magazine v. Falwell 485 U .S. 46 (1988)

130분에 걸친 마약, 비어, 섹스의 점잖치 못한 논쟁을 마감하는 연방대법원의 종결사가 무언가 교훈을 전해 주는 것 같다. 한 때 '공업용 미싱'이라는 대통령에 대한 수사적 표현이 곤욕을 치렀던 '국민의 정부'의 나라에서는 다소 수긍하기 힘든 '상놈 나라'의 판결일지 모른다. 그러나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무너진 지 오래인 세상에서는 상놈문화가 더욱 건전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지 모른다는 가설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안경환<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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