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金수석비서관의 '헛소리'

  • 입력 2000년 4월 27일 18시 58분


청와대의 김성재(金聖在)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 ‘소수의 단결은 정의지만, 다수의 단결은 불의’라는 식으로 지역문제 관련 발언을 한 것은 한마디로 잘못된 것이다. 내용도 형식도 타이밍도 다 그르친 것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정책기획수석이 총선에서 나타난 영호남의 ‘지역 몰표’에 관한 개인적 견해를 한 주간지 인터뷰에서 공인 자격으로 개진한 것부터가 적절치 못하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정부 정책을 기획하고 조언하는 그의 입장과 역할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사적(私的) 견해를 공식화해서 밝힌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일이다. 더욱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상생(相生)의 정치’를 다짐하면서 국민을 위해 극한 대립과 소모적인 정쟁을 청산하자고 손을 맞잡는 시기에 비추어 보아도 걸맞지 않은 발언이다.

지금은 국회의원 총선거라는 격전을 치르고 난 여야가 총재회담을 계기로 모처럼 지역주의 편파주의를 극복하고 상생을 화두삼아 화합과 협력을 모색하는 시점이다. 그런 가운데 나온 김수석의 이런 발언은 그야말로 경솔한 짓이며, 김대통령을 포함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발언의 당사측이 되는 영남인들의 반응이나, 영남권 의석을 석권한 한나라당의 반발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지역주의 문제, 그 연원에 대한 논란은 단순하지 않다. 책임과 가해(加害), 손실과 피해에 관한 논의는 복잡하고 지역에 따라 인식의 스펙트럼도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3공화국 이래 정치권력이 득표와 정치적인 이득을 노리고 정치공작 차원에서 자극하고 부추김으로써 비극적으로 확산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오직 권력에만 눈이 어두운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무슨 도(道)대통령을 뽑자!’는 식의 정치적 최면(催眠)을 걸어 몰표를 얻어냈고 그것이 상대의 여타 지역으로 번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고착화되고 만 것이다.

이런 지역주의의 수혜자는 여건 야건 정치권이었다. 영호남인을 포함해 지역민은 일종의 볼모요 피해자다. 이것을 두고 김수석은 이분법(二分法)적으로 어느 한쪽을 불의, 다른 쪽을 정의라는 식으로 가르고 있다. 실로 공인으로서 위험천만한 현실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가뜩이나 예민한 지역문제 발언으로 평지풍파를 초래한 김수석의 거취를 주목한다. 그리고 정치권에서 이런 일을 ‘거리’삼아 지역대결구도를 또다른 차원에서 부추긴다면 이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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