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나원형/음란물 탐닉 자녀 믿음이 약

  • 입력 2000년 4월 26일 18시 57분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인터넷에서 음란물을 접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친구가 얼마전 아들이 외출한 사이에 컴퓨터를 켜고 지난밤 늦게까지 무엇을 보았는지 조회했더니 어른들이 보기도 민망한 여러 음란사이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답니다. 친구는 자신도 아들 나이때 그 비슷한 호기심이 있었지만 지금 아이들이 접하는 음란물의 정도가 심해 여러가지 부작용이 걱정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실제로 친구의 아들은 요즘 유난히 혼자 방안에 있는 시간이 많고 말도 줄었으며 부모의 시선을 피하는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요즘 많은 가정에서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을 접하는 자녀들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신체가 성장함에 따라 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기에 제한없고 걸러지지 않은 불건전한 성 정보에 대한 접촉은 채 성숙되지 못한 이성과 자제력을 순간적으로 마비시킬 정도로 강한 해악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컴퓨터앞에 앉아 있는 자녀들을 매 순간 감시할 수도 없고 컴퓨터를 아예 치워버릴 수도 없지요. 지금 같은 첨단정보화시대에 컴퓨터는 자녀들에게 양질의 정보와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사회의 주축이 될 21세기는 정보와 지식이 자본이 되며 모든 힘은 정보와 지식산업에서 나오게 될 겁니다. 이미 우리 자녀들에게 컴퓨터는 기성세대가 느끼는 이질감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삶과 생존에 필수적인 도구이며 생활의 동반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지금이기에 그 고민은 더 큽니다.

‘가까이 보지말고 멀리 있는 산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필요한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은 간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정보의 바다를 마음껏 항해하도록 믿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벼룩을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음란사이트에 접속하고 적잖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알았더라도 마구 혼을 내지 말고 수시로 대화를 통해 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불러올 수 있는 해악을 알려 주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가 믿음과 신뢰를 보일 때 자녀들은 보다 큰 책임감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학 시절 같이 일본을 여행하던 여교수님이 서점에서 고교 1년생 아들에게 선물할 적당한 수준의 포르노 잡지를 권해 달라고 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부모와 자녀간에 이런 기본적인 믿음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모가 미리 자녀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그들을 믿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들은 좀 더 자신의 행동에 신중하게 됩니다. 자녀가 몇살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자녀들에게 믿는다고 말해주실 때입니다.

나 원 형(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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