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김동암/산불피해지 '풀옷'부터 입히자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26분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산불 때문에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산이 벌거숭이가 돼버렸다. 30년이 지나야 복구가 된다느니, 야생동물의 서식은 물론이고 식물도 살아남은 것이 없다느니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산주들도 아직 구체적인 복구대책을 못 세우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산림법이 규제 일변도여서 그렇다.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은 누구나 자유스럽게 할 수 있지만 일단 심은 다음에 한 그루 나무라도 베어내자면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내 지식으로는 지구상의 민주주의 국가 중에 이같이 산림법이 엄한 나라가 없는 것 같다. 나도 초지 연구를 목적으로 7년생 리키다소나무 13그루를 베어냈다가 검찰에 입건된 쓴 경험을 지니고 있다.

불이 스치고 지나간 산에 조림을 해서 숲이 우거지기를 기다리는 데는 30∼4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이 걸린다. 그러면 산을 가진 농민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30년을 기다려야 하는가. 한국은 6∼8월이면 연간 강우량의 3분의 2가 쏟아지는 집중호우성 기후의 국가이다. 장마로 인한 산사태와 토양 유실, 수질 혼탁은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정말 무대책일 수밖에 없는가. ‘산에는 나무’라는 우리 머릿속에 색인되어 있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된다.

홍수와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를 복구하는 데 단기간에 비용이 적게 들면서 효과적인 방법이 목초(풀)씨의 지표 파종에 의한 일차적인 식물의 피복이다. 이 방법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방법이다. 축산 선진국이자 산림 선진국인 뉴질랜드와 호주는 초기 이민자들이 산림에 불을 놓아 나무를 태운 다음에 잿더미 위에다 콩과 목초 위주의 종자를 인산비료와 함께 뿌려 땅심을 올려주고 초지(풀밭)를 가꾸어 국토를 보존하면서 중단기적으로 농가소득을 올렸고 장기적으로는 조림을 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축산물 및 임산물의 수출국이 됐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70, 80년대에는 초지개량 붐이 한창 일어났을 때 산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불을 놓아 땅에 깔린 낙엽을 태우고 목초씨와 비료를 뿌려 초지를 만들어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초지학자로서 80년대 후반기에 이런 연구를 산지에서 수행하고 국제학회에서 불을 놓은 땅은 불을 놓지 않은 땅보다 목초가 들어서는 비율이 32%나 더 높다는 것을 보고하여 다른 학자들의 관심을 끈 적도 있다. 바람이 많은 일본에서는 산불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숲과 숲 사이에 500∼700m 되는 초지를 만들어 소를 방목하며 산불도 막고 축산수익을 올린다. 일석이조의 산가꾸기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숲에 불을 놓아 초지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불행하게도 인재로 인해 산이 벌거숭이가 되었으니 국토의 보존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대안이다. 목초씨를 뿌리면 초지가 되어 토양유실도 방지되고 소도 방목할 수 있기 때문에 농가의 소득을 올려줄 수 있다. 소가 값싼 유기질 비료인 똥과 오줌을 배설해 산불로 척박해진 땅심을 회복시켜주면서 장기적으로는 조림으로 목재를 생산하면 생태계의 복원이 중단기적으로 신속히 가능해질 것이다.

목초씨를 뿌려 풀이 무성해지면 토양에는 유기물이 축적되고 이렇게 되면 야생동물이 모이고 동식물상이 복원되어 벌거숭이산은 30∼40년이 아니라 1∼2년 내에 풀로 덮어 푸른 산으로 바뀔 것이다. 이 때에 장기적으로 나무를 심어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김동암(서울대 명예교수·초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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