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웬 '준법운동'

  • 입력 2000년 4월 20일 19시 55분


법무부는 어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올해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범국민 준법운동 추진본부’를 설치해 대대적인 준법운동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법 제대로 지키기’ 운동을 하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느냐고 쉽게 생각한 것일까. 그러나 국민운동은 역사가 증명해주듯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무부가 준법운동의 주체가 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법무부는 준법운동의 깃발을 높이 들기에 앞서 법경시 풍조의 원인부터 제대로 분석했어야 한다. ‘법을 지키면 손해본다’는 잘못된 법의식이 사회개혁과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요소라고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법무부는 법경시의 원인으로 전통적인 온정주의와 정실주의, 일제치하에서 형성된 법에 대한 거부감, 근대화과정에서의 지도층의 솔선수범부재 등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오늘날 법경시 풍조의 본질적 원인으로 보기에는 너무 안이한 판단이라는 느낌이다.

우리는 보다 본질적이고도 근접한 원인으로 크게 두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고위층을 포함한 지도층과 정치인들의 ‘법을 우습게 아는’ 풍조다. 이들의 법경시 풍조사례는 멀리서 구할 필요조차 없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시민단체의 위법활동을 결과적으로 부추긴 사례가 있었는가 하면 갖가지 불법선거운동 행태와 후보들의 납세상황, 병역 전과관계를 보면서 국민은 많은 정치인들이 상습적 무법자(無法者)임을 재확인했다. 정경유착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받은 돈을 ‘정치자금’으로 호도하고 또 그것이 사법적 판단을 거치면서 묵인되기도 한다. 이러고도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는 법무부 및 검찰의 법과 원칙을 벗어난 자의적(恣意的) 법집행이다. 언제부터인가 검찰은 ‘정치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오면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켜내지 못했다. 최근 정치인들의 병역비리 수사만 해도 검찰은 정치권의 정략적 이해에 따라 춤을 췄다는 비판을 받았다. 선거운동기간을 앞두고 예정돼 있던 옷로비의혹사건의 첫 공판을 정당한 이유없이 선거후로 미룬 것 역시 마찬가지다.

준법운동의 우선적 대상은 오히려 지도층과 정치인, 법집행자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뼈아픈 성찰 위에 새로이 준법의식을 심어나간다면 국민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본받게 될 것이다. 다짜고짜로 국민에게 준법정신을 심어주겠다는 것은 구태의연한 권위의식의 발로요 국민을 얕잡아 보는 짓이다. 제2건국운동처럼 관(官)주도의 국민운동은 시대에 걸맞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실효도 거두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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