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풀죽은 성장株 살아나는 가치株…은행주 급부상

  • 입력 2000년 4월 17일 19시 40분


미국과 국내 증시의 첨단기술 관련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증시의 주도세력이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옮겨가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보통신 및 인터넷기업의 주가는 그동안 ‘미래성장성’이라는 막연한 개념이 반영돼 폭등세를 이어왔지만 주가를 뒷받침할 만한 실적이 나타나지 않자 이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최근 주식을 내다팔고 있는 양상.

이에 따라 미국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가치주의 대명사인 은행주가 급부상하고 있다. 17일 대폭락장세에서도 일부 은행주는 주가가 올랐고 한국전력 포항제철 등 전통적인 ‘굴뚝산업’ 주가는 정보통신업종에 비해 낙폭이 훨씬 적었다.

▼실적 뒷받침 안돼 실망▼

▽성장주 기대가 너무 컸다〓신한증권 정의석 연구원은 “지난달말부터 시작된 성장주 폭락세는 높은 성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구체적 실적으로 가시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불안감이 다시 주가하락을 촉발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결산실적이 예상에 못미치고 반독점법 판결이 불리하게 나오자 나스닥시장이 폭락한 것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터넷기업은 미국 인터넷기업의 회원 한 명당 가치를, 정보통신기업은 미국내 관련산업의 발전속도를 기준으로 매출액과 순이익을 추정했기 때문에 나스닥기업이 폭락하면 코스닥기업가치도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국내 첨단산업이 미국산업과 같은 궤도를 그리며 성장할 것을 가정한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정연구원은 “벤처성장주들은 고가주인 점을 활용해 증시에서 엄청난 자금을 조달해 비효율적인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며 “기술발전 속도가 빠르고 경쟁도 치열한 상황에서 조달자금을 비관련 분야에 투자해 바람직한 결과가 나온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들 은행주 집중매집▼

▽은행 등 가치주 대안으로 부상〓외국인들은 이달 10일부터 거래소시장에서 국민 주택 신한 등 우량은행주를 집중 매입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일부에서는 국내증시의 패러다임이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옮겨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래가 불확실한 성장성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장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더라도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는 가치주가 훨씬 안전하기 때문.

미국에서도 나스닥지수가 폭락할 때 은행 전력 관련주가 대안으로 부상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외국인의 은행주 매입을 가치주 전환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SK증권 유정석 연구원은 “우량은행은 수익가치의 40∼60%, 비우량은행은 수익가치의 35% 수준에서 거래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며 “은행주의 단기 적정가치는 자산가치 대비 주당장부가치비율(PBR) 1.4배를, 장기적으로는 수익가치 대비 주가수익비율(PER) 10배 적용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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