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최재천/인본주의 허구-오만으로부터의 탈출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42분


▼'챨스 다윈' 피터 J. 보울러 지음/전파과학사 펴냄▼

오는 수요일은 4·19혁명 40주년 기념일이다. 그날은 또 자연선택설로 우리의 사상체계를 뿌리째 흔들며 이른바 ‘다윈혁명’을 몰고 왔던 챨스 다윈(Charles Darwin·1809-1882)이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등장하기 전 거의 2000년 동안 서양철학의 사상적 기반은 플라톤의 본질주의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 세상은 영원불변의 전형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러한 전형으로부터의 변이는 진리의 불완전한 투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념은 훗날 기독교 신학과 손을 잡으며 오랫동안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 우주는 물론 그 안의 모든 생물체들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믿음은 영원불멸의 진리를 찾으려는 본질주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윈은 우리에게 변이, 즉 다름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다르다는 것은 불완전함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원동력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처지고 만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 인간만은 특별히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도 결국 자궁을 통해 아이를 낳고 젖을 먹여 키우는 일종의 젖먹이동물일 뿐이다. 다른 모든 생물들이 자연의 선택을 받으며 진화해오는 동안 어찌하여 우리 인간만 홀로 신의 선택을 받았단 말인가?

다윈이 제안한 자연선택설의 의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처럼 인간을 모든 다른 생물체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이른바 이원론에 바탕을 둔 인본주의의 허구와 오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었다는 점이다. 인간과 원숭이가 그 옛날 공동 조상을 지녔다는 사실만큼 우리를 철저히 겸허하게 만드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는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1000명에 대한 ‘1000년, 1000인’이 출간되었다. 다윈은 갈릴레오와 뉴튼에 이어 과학자로는 세 번째, 전체로는 7위에 선정되었다. 다윈의 이론은 이제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새 밀레니엄의 문화 전반을 주도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 때문인지 국내에서도 최근 다윈의 이론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이에 한양대 생물학과 박은호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동물학회 소속 생물학자 30명이 공동으로 번역한 ‘챨스 다윈’ 을 현대인의 필독서로 추천한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