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판 돈뿌리기' 고발하자

  • 입력 2000년 4월 9일 20시 21분


총선을 사흘 앞두고 여야의 ‘돈 살포’ 상호 공방이 뜨겁다. 상대측이 중앙당 차원에서 경합 또는 열세지역에 집중적으로 돈을 퍼부어 막판에 판세를 뒤바꾸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들이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주된 타깃삼아 비난하며 자민련과 민국당은 한나라 민주 양당 모두에 금권선거 책략을 중지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여권이 수도권 경합선거구를 싹쓸이하기 위해 수천억원의 자금을 살포하려 한다는 극비정보를 입수했다”며 그같은 계획을 중단하지 않으면 정권퇴진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세풍(稅風)’ 잔여금과 공천헌금을 받은 돈으로 자금살포 규모를 더욱 확장하려 한다”며 이를 은폐하려고 여당에 금권선거 ‘덮어씌우기’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판이 온통 돈으로 뒤덮인 듯한 느낌을 주는 폭로다.

정당들마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도 아직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폭로를 하는 듯하지만 딱 부러지게 내놓는 물증이 없다. 과거 선거의 예로 보아 막판 돈뿌리기가 극성을 부렸으며 이번 선거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란 개연성은 물론 충분하다. 그러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폭로는 우선 상대를 죽이고 보자는 저열한 매터도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또 실제 자신이 돈 뿌리는 것을 호도하려고 상대를 음해하는 것이란 비난을 살 수도 있다.

더욱 문제는 선거 자체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감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자격없는 후보들이 대거 나선데다 정당은 흑색선전 등 진흙탕 싸움에만 골몰하며 금권선거 공방마저 치열하게 벌이니 투표할 마음조차 앗아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정당의 폭로행태에 대한 이런 지적과는 별개로 금전과 향응제공 등 돈 선거 양상은 심각한 수준인 게 사실이다. 이미 선관위와 경찰이 적발한 선거관련 금전사범만도 15대 총선 전체의 적발건수를 훨씬 뛰어넘었다. 투표일 직전 금품살포가 심해질 것은 분명하므로 ‘16대 총선은 돈선거였다’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여느 선거와 달리 후보의 신상명세가 공개되고 시민단체의 낙선운동도 활발한 판에 구태 중의 구태인 돈선거가 되살아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금권선거는 유권자혁명을 저지하려는 구시대 정치의 마지막 저항이다. 이제야말로 유권자들이 앞장서 돈 주는 후보를 고발해야 한다. 돈의 유혹을 뿌리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부정을 척결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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