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썸머 오브 샘'/"넌 단지 희생양일 뿐이야"

  • 입력 2000년 3월 23일 20시 22분


희생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프랑스 문화이론가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집단 내의 근원적 상호 폭력성은 집단 자체 내에서는 종식될 수 없고, 바깥의 뭔가를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모든 폭력을 한꺼번에 전가할 수 있는 무력한 존재인 희생양이 선택된다는 것.

스파이크 리 감독의 ‘썸머 오브 샘(Summer Of Sam)’은 이처럼 들끓는 욕망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에서 무기력하고 소외된 사람이 희생양으로 선택되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빼어나게 그린 영화다.

그의 영화 가운데 흑인이 나오지 않는 첫 영화인 ‘썸머 오브 샘’은 23년 전 뉴욕에서 발생했던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살인사건보다 자기와 다른 타자에 대한 집단의 폭력에 초점을 맞춘다.

▼비정상이란 이유로 살인범 지목▼

1977년 뉴욕 브롱크스 거리에서 ‘샘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살인마의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주민들은 공포에 시달린다. 급기야 이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직접 살인마를 잡으러 나서고 펑크족에다 게이 클럽의 댄서로 일하는 리치(애드리언 브로디 분)가 용의자로 지목받기에 이른다. 주민들이 외국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샘을 잡자”며 성대한 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중세 마녀사냥처럼 광기들린 종교의식을 연상시킨다. 리치를 살인범으로 지목한 건 “아무튼 정상적이지 않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다.

▼비열한 집단의 폭력 고발▼

후반부에 살인범이 다른 곳에서 잡혔는데도 리치를 잡으러가는 청년들은 리치의 친구인 비니(존 레귀자모)에게 자신들의 선택에 동의해주기를 요구한다. 스스로의 결정에 확신이 없으면서도 희생양을 통해 불안을 잠재우려는 이들의 시도는 집단적 공포에 직면하면 사람이 어디까지 비열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 끔찍한 사실은 이들이 평소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웃들이라는 점.

스파이크 리 감독은 비니와 디오나(미라 소비노) 부부를 중심으로 불륜과 혼음 등 광란으로 치닫는 욕망과 연쇄살인사건이 야기하는 불안을 결합시켜 들끓는 욕망과 불안이 동전의 양면임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주제의식이 분명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치고 1970년대의 대중문화가 잘 반영돼 볼거리가 풍성하다. 리치와 비니 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잔인한 살인, 혼음 등 10여분의 장면이 심의과정에서 삭제됐다. 18세 이상 관람가. 4월1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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