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저질 말싸움' 걷어치워라

  • 입력 2000년 3월 23일 19시 36분


총선을 20일 앞둔 선거판이 여야 지도부의 온갖 원색 저질 무책임 발언으로 얼룩지고 있다. 지역감정 부추기기와 색깔론으로 한바탕 분탕질을 하고는 비난 여론에 밀려 잠시 정책공방으로 돌아가는 것 같더니 다시 ‘막가파식’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아수라장으로 몰고가고 있다. 여기에 전임 대통령까지 가세하고 나서 실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22일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을 싸잡아 “과연 두 사람 모두 지도자로 자격이 있고 국내에 살 자격이 있느냐”고 공격했다. 이총재의 경우 두 아들의 병역문제가 아직 명확하게 해명되지 않았고, 김전대통령은 나라를 망친데다 두 아들 역시 현역 복무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 사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공당의 대변인이 현직 야당 총재와 전임 대통령에게 ‘국내 거주 자격’까지 따질 수 있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국내에 살 자격이 없다면 어디 해외망명이라도 하란 말인가.

같은 날 이회창총재는 이에 대한 맞공격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하야(下野)를 거론하고 나섰다. “만일 김대통령과 정부의 선거개입이 계속된다면 선거 후 예상치 못할 정치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전제가 붙기는 했지만 이총재의 발언 또한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하야’라는 현실성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단어를 함부로 구사하는 것은 야당 총재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YS는 더 이상하다. 그는 어제 핵심측근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에게 “김대중씨는 재임 2년동안 독재와 갖가지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다. 이제는 하야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민주당 대변인의 ‘경망스러운 공격’에 대한 반격인 듯 싶으나 전임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측이 즉각 “정치 사회적 불안을 선동하고 혼란을 유발, 정권을 탈취하고자 하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발끈하고 나선 것도 볼썽사납기는 매한가지다. 나라와 국민에 아무런 득될 것이 없는 저질 싸움에 여야(與野)지도부와 전임대통령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그렇지 않아도 혼탁한 선거판에 이같은 막말들이 터져나오면서 이번 총선의 쟁점을 그나마의 정책대결에서 부질없는 말싸움으로 끌고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여야 모두 원색적인 말의 공방을 즉시 걷어치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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