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몸이야기]발/인체의 주춧돌…평생 푸대접

  • 입력 2000년 3월 23일 19시 36분


‘巧言令色 足恭’의 발음은 ‘교언영색 족공’?

아니다. 이때 ‘足’은 ‘지나칠 주’. 글귀의 뜻은 ‘번지르한 말과 뺀질한 얼굴 등 지나친 아부’이며 공자는 논어에서 요런 짓이 참 부끄럽다고 했다.

‘足’은 안분지족(安分知足)에서 쓰이는 것처럼 ‘만족하다’‘충분하다’는 뜻도 갖고 있다. ‘지나치다’와 ‘충분하다’의 모순되는 두 뜻을 함께 갖고 있는 보기드문 한자어다.

발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공학의 걸작이요, 예술작품”으로 격찬한 것처럼 ‘충분히’ 대접받아야 함에도 보통 사람에겐 신발과 양말 속에서 ‘지나치게’ 푸대접받는 기관이기도 하다.

한자 ‘족(足)’은 어원상 무릎을 본뜬 ‘口(구)’와 정강이부터 발목까지를 본뜬 ‘止(지)’를 합친 부위를 가리키지만 의학적으로는 발목 아래 부위만 해당된다.

발은 뼈 26개, 관절 33개, 근육 20개와 인대 100여개로 이뤄져 있으며 평생 1000만번 이상 땅과 부딪친다. 발은 60세까지 지구 세바퀴 반 거리인 16만㎞를 여행하며 1㎞ 걸을 때마다 16t의 무게가 실린다.

한방에선 우리 몸에서 기(氣)가 흐르는 길인 ‘경락’ 12개 중 간장 비장 쓸개 위장 방광 콩팥을 관장하는 6개가 발에 흐르며 발의 경혈(經穴)을 눌러주면 특정질환의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그래픽 참조).

발바닥엔 인체에서 손바닥 다음으로 땀샘이 많아 양말의 화학성분과 합해져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최근 통증클리닉에선 자율신경계의 고장으로 땀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생기는 것이 발냄새의 원인임에 착안, 약물로 신경마디를 죽여 땀을 없애는 방법을 쓰고 있다.

손금과 마찬가지로 발금도 있다. 개인마다 달라 손의 지문이나 손바닥의 손금처럼 쓸 수 있으며 역술인들은 ‘수상<족상<관상<심상’이라며 발금을 손금보다 높이 친다.

생물학적으로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생긴 것.

발톱은 손톱과 함께 태내에서 8∼12주쯤 생겨 하루 평균 0.25㎜ 정도 자란다. 손톱 성장속도의 4분의 1.

발톱으로도 건강의 이상을 알 수 있다. △스푼처럼 패이면 철분결핍성 빈혈이나 피부질환 △벗겨지면 폐질환 매독 △끝부분이 곤봉처럼 변하면 호흡기질환 △가로로 갈라지거나 부서지면 혈핵순환장애 △세로로 갈라지면 천식 원형탈모증 △사각형이면 갑상선기능 이상 △검은 때가 끼면 신장기능 저하 △두께가 두꺼워지면 당뇨병 뇌졸중 △검은 반점이 나타나면 흑색종이나 피부암의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짓궂은 친구들이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의식’을 벌인다.

발바닥 중심부 깊은 곳인 ‘장심’엔 위 심장 간장 신장 등의 반사구가 모여있으며 발꿈치에는 생식선의 반사구가 모여있다. 신랑의 발바닥을 두들기는 이같은 전통은 ‘이제 어른이 되니까 가족을 부양하고 살려면 건강해야 된다’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

남성의 발은 무술스타 이소룡 이연걸 등 ‘고수’들이 보여주듯 무예의 무기로 발달해왔으나 여성의 발은 수백년 동안 ‘미’의 명목 아래 비정상적 좁고 짧게 조여져야 했다.

중국 여인들은 6살 부터 발을 묶는 전족의 시련에 들어갔는데 비정상적으로 발이 적어지면 상대적으로 괄약근이 발달해 남성의 성적 만족을 증가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서양인들도 발이 큰 남성은 음경이 크고 발이 작은 여성은 질이 작다고 여겼다. ‘당신의 발이 너무 커서 사랑할 수 없어요’란 재즈 가사가 있을 정도.

발키스는 극단적인 겸손이나 굴복의 표현. 로마의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알현하려 오는 인사들에게 ‘굴복’을 요구했다. 교황이 신도들의 발을 씻기고 키스를 하는 것은 겸손의 상징.

기독교에서는 오른발은 선, 왼발은 악을 뜻한다고 믿는다. 신이 오른발을 통해 역사하고 악마는 왼발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군대행진에서 왼발을 먼저 내미는 것도 병사들에게 적의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도움말〓을지대 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이경태교수 02-970-8259, 한양대 족부정형외과 성일훈교수 02-2290-8473, 경희대강남한방병원 발관리클리닉 김용석교수 02-3457-9013)

▼발의건강…앞 뾰족한 구두 신으면 엄지 발가락 휘어진다▼

건강한 발의 조건은 5무(무). 무통(무통) 무변형(무변형·변형된 부위가 없는 것) 무부종(무부종·붓지 않는 것) 무냉(무냉·시리거나 차지 않는 것) 무육자(무육자·티눈이나 굳은살이 없는 것) 등이 그것이다.

▽무지외반증(버선발 기형)〓가장 흔한 발질환. 엄지 발가락이 검지발가락쪽으로 심하게 휘는 증상. 10명중 한 명꼴로 발생. 특히 40대 여성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하이힐 등 앞이 뾰족한 신발을 신는 것이 원인. 을지대 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이경태교수는 여성들에게 “다양한 굽높이의 신발을 교대로 신되 앞코가 네모난 신발을 고르라”고 조언. 가벼운 변형은 앞이 넓은 신발을 신으면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엄지 발가락이 35도 이상 휘어진 중증은 수술해야 한다.

▽편평족(평발)〓발 안쪽의 움푹 패인 아치가 내려앉은 발. 선천성과 후천성 요인이 반반. 선천성은 중고교 시절부터 발이 아프기 시작하지만 후천성은 평발증세와 함께 통증도 나타난다. 조기발견하면 깔창 등 교정 보조기만으로 치료 가능. 발도장 족압측정 방사선촬영 자기공명촬영 등으로 진단.

▽당뇨병성 족부질환(당뇨발)〓당뇨병의 3대 합병증 중 하나. 발이 시리거나 저리고 화끈거리는 증상과 함께 상처가 날 경우 아물지 않고 썩는다. 초기 치료가 늦어지면 발을 잘라야 한다. 발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발톱 깎을 때도 조심하고 끼는 신발은 금물.

▽염좌〓발을 삐어 인대가 끊긴 경우. 3일 이내 치료가 중요. 통증완화에는 얼음마사지가 좋고 3주 이상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족저근막증〓자고 일어나거나 오래 앉았다 일어설 때 발뒤꿈치나 발바닥이 아픈 증상. 원인불명이며 계단에 앞꿈치만으로 서 있는 동작을 꾸준히 하면 아킬레스건이 강화돼 증세가 완화된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