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새천년]개인주의 시대 공동체 모습은…

  • 입력 2000년 3월 22일 19시 25분


발칸반도나 아프리카에서는 민족 또는 종족간의 분쟁을 통해 아직도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근대의 과제에 집착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서유럽에서는 300∼400년 동안 유지해 온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유럽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이 국민국가로 대표되는 근대의 공동체는 이제 효력을 다한 것인가. 민주화와 과학기술의 발달 속에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가상공간의 확대로 국경 붕괴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에서는 오늘도 또다시 수많은 공동체들이 생성되고 있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발달해도 인간은 혼자 힘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것인가보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개인에게 울타리이자 지붕이 되어줄 새로운 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신자유주의와 유럽통합〓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가 전지구화하면서 각국의 정치경제체제가 격변하고 있다. 97년말 아시아권에서 시작된 세계 외환위기는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국가단위의 통제장치가 무력화된 것. 이는 곧 17세기 이래 인류가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로 여겨 온 ‘국민 국가 모델’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국가는 국경을 경계로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공동체다. 동일한 언어 문화 전통 등을 바탕으로 공동의 사회경제생활을 영위하는 공동체, 즉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다. 바로 그런 공동체가 집단의 발전을 극대화하고 분쟁을 최소화하는 데에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 국민국가 체제가 성숙 단계에 이른 20세기에도 두차례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출현 등 참혹한 역사는 계속됐고 개별국가 내의 불평등도 해소되지 않았다. 인류는 이미 지난 세기 중반부터 이 체제의 효율성을 회의하게 됐다.

그로 인한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유럽통합이다. 89년 냉전체제 붕괴 이후 유럽 국가들은 마스트리히트 조약(92년)을 맺고 본격적인 통합작업에 나섰고 화폐통합(99년)으로 실질적인 통합의 길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국민국가라는 발명품을 만들어냈던 유럽이 또 가장 먼저 다음 단계의 실험을 시작한 셈이다.

사실 인간의 역사는 개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신장시켜 온 과정이었다. 공동체가 그 과정에 장애가 될 때는 이를 새로운 형태로 교체해 왔다. 16∼17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사제들의 품을 탈출해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로 신 앞에 나섰던 인간들은 17∼18세기 시민혁명을 거치며 국민국가를 형성,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신장시켰다.

이로써 국민국가라는 정치경제공동체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실현에 가장 이상적인 제도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이 ‘국민국가’조차 이제는 개인의 권리를 신장하는 데에 장애물로 여겨진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이미 개인의 몸과 마음은 국경을 넘나들고 현실세계의 국경은 이런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다. 이전에는 국경이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장치였지만 개인의 능력은 이미 국가의 보호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하다.

▽신보수주의와 통신혁명〓인간사회는 이제 공동체의 완전한 해체와 개인의 파편화의 길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지금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고 실험하는 모색의 시대를 맞을 것인가.

그에 앞서 20세기말 기존 공동체의 해체를 불러온 신자유주의의 기저를 살펴보자. 복지국가의 비효율성을 비판하고 시장근본주의를 주장하며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 이동을 주장하는 한편 가족 성차이 민족 종교 국가 등 비시장적 전통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이런 보수주의적 입장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통신혁명이다. 인터넷을 통한 전세계의 네트웍화는 인간의 시공간 개념을 바꿔놨다. 인간들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정보를 주고받으며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 수시로 연대하고 수시로 흩어진다.

가상공간에서 각 개인은 취향이나 관심 등에 따라 이합집산을 계속하며 가상공간의 모임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분화한다. 이제 국민국가 형성의 주요요건이던 혈연 지연 언어 문화 경제 등의 동일성은 개인간 연대의 수많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타민족 타문화 간의 직간접 접촉이 활발해지고 경제교류도 증가하면서 민족과 국가를 구분하던 장벽이 허물어지고 언어 장벽마저 번역시스템의 개발로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가상공간에서는 민족이나 국가 등에 제약되지 않고 순수한 개인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활동하는 인간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을 볼 수 있다.

개인의 힘은 이미 자본과 정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연대해 정부와 기업에 맞서고, 일정한 목표를 성취하면 스스로 해산해 또다른 연대를 이루고 해산하기를 반복한다.

물론 그렇다고 국민국가가 쉽게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교류가 활발해지고 가상구현기술이 발달해도 시간과 공간의 현실적 거리는 존재한다. 사이버 상거래가 아무리 증가해도 거래되는 물품은 현실 속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육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육체가 갖는 시공간적 제약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국민국가가 급속히 약화되리란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동물의 새로운 공동체〓요즘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보면 인간은 역시 사회적 동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가상공간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자신이 가진 정보를 제공한다. 유사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고 때로는 힘을 합쳐 뭔가 일을 도모하기도 한다. 나이나 직업에서부터 취미, 질병, 버릇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유로 모여서 동호회를 만들고 때로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연대한다. 병든 아이를 돕자는 모임에서부터 최근의 낙천낙선운동까지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이뤄내기도 한다. 인간이 역사를 일궈 온 엄청난 힘은 역시 타인과의 연대에서 나온 것이다.

인터넷 기반시설을 갖추기 위한 투자비용으로 인해 인터넷이 부익부빈익빈을 심화시키리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그런 투자를 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토록 하는 것이 국가나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보통신의 독점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 독점이 주는 이익보다는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케 함으로써 정보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이 정보를 소통시킴으로써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새천년을 시작하며 우리는 이미 공동체의 소멸이 아니라 공동체 개념의 크나큰 변화를 보고 있다. 혈연 지연 문화 경제 공동체로서의 의미는 약해지고 그러한 경계를 넘어 개인의 관심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수많은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공간에서든 가상공간에서든 인간은 혼자의 힘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특별한 이해관계 없이 정보의 소통이 이뤄지는 가상공간을 체험하며 진정한 협동의 의미를 깨달을지도 모른다. 북한산에서 죽어가는 나무 한 그루를 사랑하자는 모임에서부터 검열폐지, 하천살리기, 경제정의실천, 낙천낙선 등에 이르기까지 개개인이 모여 이뤄내는 힘을 체험하며 동등한 인간 개인의 존엄성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독재정권이나 독점자본 등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배타적 공동체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렇지만 어떤 가능성도 희생을 각오한 도전과 노력 없이 이뤄지는 법은 없다.

▼ 키워드 /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공동의 이익보다 중시하는 데 반해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권리보다 공동선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가 반드시 대립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억압하는 신분계급적 공동체에 대한 저항을 통해 생겨났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 공동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신장시키는 데 공동체의 역할이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공동선의 추구라는 명목 아래 개인의 권리를 억압해 온 인류 역사에 비추어 공동체 중심의 사상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다.

자유주의 확산 후 그 문제점을 비판하며 다시 전면에 드러난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권리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기능을 경시한 극단적 개인화가 오히려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초래해 진정한 개인권의 실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그러므로 현시대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는 모두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길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공동의 목적을 추구한다. 현실적으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그 목적을 실현하는 데 효율적이냐의 문제이지 양자 택일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가상공간의 확장이 현실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어떤 의미와 기능을 갖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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