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고어-부시/'아버지의 후광'은 得인가 失인가

  • 입력 2000년 3월 14일 21시 28분


앨 고어는 백악관에서 10여블록 떨어진 곳에서 태어나 의회가 열리고 있는 동안에는 워싱턴의 외국 대사관들 한복판에 자리잡은 호텔에서 자랐다. 조지 W 부시는 백악관을 아버지의 직장으로 알고 있었다. 고어는 하버드대를 다녔고 부시는 예일대를 다녔다.

정치는 이들의 피 속에서 너무나 강렬하게 고동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일찍부터 의회 의석에 도전했다. 고어는 28세 때인 1976년에 한때 아버지가 의원으로 있던 지역구에서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해 승리했다. 부시는 그로부터 2년 후 32세의 나이로 역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패배했다.

▼화려한 정치 代물림▼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새로운 정치라든지 신선한 시각 등이 강조되었지만, 어쨌든 이제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이 두 사람의 대결로 좁혀졌다. 전직 상원의원의 외아들인 앨 고어와 전직 대통령의 맏아들인 부시.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점과 정계의 왕자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역사가들과 정치 분석가들은 미국 역사상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이처럼 화려한 배경을 가졌던 적도, 두 사람처럼 같은 세대 출신이었던 적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의 배경이 비슷하다는 것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몇몇 정치 분석가들은 이것이 미국 정계의 상태와 유권자들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고어와 부시 두 사람 앞에 가로놓인 도전 중의 하나는 자신들의 정치적 배경이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 동시에 그 정치적 배경에 발목이 잡히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전략가인 빌 캐릭은 “두 사람이 ‘전통을 살리자’는 식의 선거 슬로건을 내걸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캐릭을 비롯한 여러 정치 분석가들은 고어를 지지했던 민주당 유권자들과 부시를 지지했던 공화당 유권자들이 사실 어느 정도까지는 전통을 살리자는 식의 선택을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정치에 대해 선천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사회적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사람을 후보자로 택했다. 베트남에서 5년 반 동안 포로생활을 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경험은 유권자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매케인보다 젊은 고어와 부시는 매케인보다 더 귀하게 자란 자신들 세대의 방식으로 베트남 전쟁을 겪었다. 고어는 종군기자로 잠깐 베트남에 가 있었고, 부시는 텍사스 주방위군에서 파일럿이 되어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유권자들 '전통' 선택▼

공화당의 전략가인 돈 시플은 “만약 지금이 계급 구분이 좀 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제불황기였다면 베트남 전쟁 동안 두 사람이 보여준 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만약 미국이 위기를 겪고 있다면 유권자들은 기존의 체제를 상징하는 사람을 거부하고 대신 특이하고 모험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여론조사 담당자인 셀린다 레이크는 “사람들은 때로 미국인들이 좋은 시절에 모험을 즐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인들은 어려운 시절에 모험을 선택한다”면서 “지금 사람들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지켜줄 사람을 찾고 싶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크는 여러 유권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유권자들은 부시가 중요한 시기에 자기 아버지에게 전화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경계심을 갖기보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전술적 교훈얻기도▼

고어와 부시, 그리고 그들의 지지자들은 두 사람이 훌륭한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자신의 노력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배경이 많은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두 사람은 아버지들 덕분에 정치적인 네트워크, 비교적 용이한 자금모금, 즉각적인 언론의 관심 등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자기 아버지들의 성공과 실패로부터 많은 전술적 교훈을 얻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고어는 오랫동안 테네시주의 상원의원으로 있던 아버지가 1970년에 선거에서 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버지와 대결했던 공화당 후보의 비열하고 부정적인 공격 때문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난 9개월 동안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을 호되게 몰아붙였다. 최근 고어의 전기를 쓴 빌 터크는 “그의 아버지의 정치적 실패는 상원의원 시절의 업적만큼이나 많은 교훈을 그에게 주었다”면서 “그것을 통해 그는 공격적인 정치의 힘을 배웠다”고 말했다.

부시 역시 아버지가 1992년에 대통령 재선에 실패한 것에서 비슷한 교훈을 얻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단호한 태도보다 유권자들의 요구에 순응하는 방식의 선거전을 펼쳤고, 보좌관들 사이의 불화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아들 부시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재빨리 매케인 상원의원을 수세로 몰아붙였으며, 오랫동안 자신을 지지해온 사람들의 단단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아버지와 차별화 안간힘▼

그러나 고어와 부시가 이번 선거전에서 각각 자신의 아버지들에 대해 보이고 있는 태도는 사실 좀 더 복잡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배경에 너무 의존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어의 보좌관들은 고어가 부통령이 된 1992년부터 고어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1998년까지 기자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요즘 고어는 거의 끊임없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야간에 법대를 다녀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아버지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생의 성공을 거둔 이야기를 주로 강조한다. 그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테네시의 노인 유권자들만이 그의 아버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가 아버지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정을 이용하려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전직 대통령 조지 부시는 대통령에서 물러난 지 겨우 7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따라서 그의 아들 부시는 아버지를 언급할 때 고어보다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부시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정치가가 되는 훈련을 받아왔으므로 나라를 잘 경영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완곡하게 표현함으로써 아버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http://www.nytimes.com/library/review/031200wh-gore-bush-review.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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