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관권선거인가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꼭 한달 전인 2월14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유교 원로 및 지도급 인사들과 함께한 청와대 오찬에서 “이번 4월 총선은 아주 공명하게 치러져야 한다. 관권선거는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후 한달이 지나는 동안 김대통령이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던 관권선거에 대한 우려가 차츰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듯싶다.

한나라당은 어제 “각 부처 장관들이 지방 나들이를 통해 선심성 정책공약을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 사례들을 공개했다. 행정자치부 교육부 정보통신부 기획예산처 등 정부 주요부처 장관들이 최근 줄줄이 지방을 방문해 지역 현안사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는 등 실질적인 관권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새로 취임한 장관의 지방순시라거나, 미리 예정된 상례적인 활동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과연 지방자치시대에 지역사업의 대책회의 또는 관련행사 정도에 장관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때가 때인 만큼 이런 ‘속 들여다뵈는 지방 행차’는 자제되어야 마땅하다.

국정홍보처가 ‘국민의 정부 2년’이라는 홍보 만화책자를 30만부나 찍어 각급 관공서는 물론 미용실 부동산중개업소 버스터미널 열차 등에 뿌리다시피 하는 것도 전형적 관권선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책자에는 등번호 2번을 단 마라톤 선수를 내세운 그림이 들어 있어 총선에서 여당 후보(기호 2번)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라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유권자인 국민으로선 불쾌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지난 설을 전후해 말썽이 됐던 농림부의 ‘OK 농정’과 함께 정부 홍보물의 대량 배포를 자제해줄 것을 정부측에 정식 요청했다. 결국 정부측이 이를 무시하고 있는 셈이니 이러고서도 이 정부에 공명선거 의지가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잖아도 이번 총선은 사상 유례 없는 과열 혼탁선거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런 판에 이를 방지하고 관리해야 할 정부가 여전히 ‘관권선거의 구태(舊態)’에 매달린다면 정말 나라의 장래가 캄캄하다. 이제부터라도 집권여당의 선거대책용으로 발표되는 듯한 모든 선심성 공약에 정부가 들러리를 서서는 안된다.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처럼 여당의 지구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등 ‘분별 없는 행태’를 보여서도 안된다. 관권선거는 엄청난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정부당국자들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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