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호택/미아리 텍사스의 사회학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여성 경찰서장이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미아리 텍사스촌’이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성북구청은 내친 김에 텍사스촌을 몰아내고 상가를 조성하기 위해 전기와 수돗물을 끊을 계획을 세웠으나 관련기관의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이다.

나는 미아리 텍사스의 고객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집단 윤락촌은 천번 만번 없어지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그러나 단전(斷電) 단수(斷水) 같은 방법으로 인류 최고(最古)의 직업을 없애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발상이다. 미아리 텍사스를 치면 파주 용주골로 옮겨갈 뿐이다. 정보통신기술(IT) 시대의 섹스산업은 굳이 미아리 텍사스처럼 쇼 윈도를 갖춘 영업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벌써 채팅방 전화방 등을 통해 손님을 만나는 사이버 매춘이 번성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보건복지부 추계에 따르면 룸살롱 안마시술소 이발소 증기탕 티켓다방 등 향락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50만명을 넘어섰다. 비단 매춘뿐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어느 나라에 가보더라도 한국처럼 접객업소에 여성이 많이 취업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구미 국가의 식당에 들어서면 남성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른다. 서울의 갈비집에서는 젊은 여성이 고기를 굽고 가위로 썰어주는 일까지 한다.

기업들이 선발하는 여성인력은 아직도 ‘화초용’이 많다. 투자기업의 서울 오피스를 둘러본 외국인 경영자가 “이렇게 용모 위주로 여성직원을 채용하면 경쟁력이 오르겠느냐”고 걱정하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여성근로자를 채용할 때 용모 신장 등 신체적 조건을 요구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어디까지나 장식용 조문이다.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면 스튜어디스가 대부분 40, 50대 중년여인들이고 스튜어드들도 많은데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비행기에서는 미인대회에 나갈 젊은 여성들이 서비스를 한다. CNN에 나오는 여성 앵커들은 인종이 다양하고 용모도 그저 수수하다. 한국 TV의 여성앵커들은 최진실이나 채시라보다 더 예쁘다.

나라의 체통으로 보나, 건전한 근로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나, 향락산업이나 접객업에 종사하는 여성인력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여성들이 그런 곳에 취업하지 않더라도 능력을 발휘하고 적정한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 능력없는 남자들이 여성들의 경쟁을 제도적으로 배제하고 일자리를 독차지하니 누이들이 웃음이라도 팔러 나서는 것이다.

이번에 비례대표 의석의 30%를 여성에게 할당한 정당법이나, 소수민족과 여성의 고용을 크게 늘린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처럼, 입법을 통해서라도 사회 각 부문의 여성 채용을 확대하면 접객업소와 향락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인력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기업들이 여성을 30% 채용하게 되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화초용이 아니라 일할 능력을 갖춘 여성을 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기와 수돗물을 끊지 않더라도 미아리 텍사스에서 윤락녀 구하기가 차차 어려워지고 젊은 여성이 시중을 드는 고급 음식점도 사라져갈 것이다.

황호택<기획팀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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