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김형주/실패한 벤처 제때 청산을

  • 입력 2000년 2월 16일 19시 32분


최근 불어닥친 인터넷 광풍과 주식 시장 활황에 힘입어 신정부 출범 이후 집중적으로 추진한 벤처육성 정책이 코스닥시장 활성화, 대규모 고용 창출, 해외투자자금 유치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30년 이상 걸려 구축된 벤처산업 인프라를 국내에서는 최근 2년 만에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거품 혹은 냄비근성의 산물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신바람난 국민의 집중력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지금이야말로 튼튼한 벤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모두들 성공한 벤처기업의 엄청난 고수익만을 보고 너도나도 벤처로 뛰어들지만 벤처에 도사린 고위험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통계를 보면 벤처 창업 후 중견기업으로 도약에 성공하기까지 벤처 기업인들은 평균 2.8회 창업한다. 즉 성공하기 전에 통상 2번 이상 벤처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 중에 창업 2년 뒤까지 성장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벤처의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한국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벤처 인프라가 잘 발달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조차 대부분의 벤처는 실패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98년 봄 이후로 이제까지 1만개에 가까운 대부분 벤처가 실패를 모르고 계속 생기기만 했으니 이제부터 벤처의 실패 사례가 하나둘씩 나오더라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참신한 아이디어나 기술력 없이 무작정 뛰어든 부실한 벤처기업들이 실패하는 사례가 많이 나와야할 때다. 실리콘밸리처럼 건강하게 문닫고 씩씩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튼튼한 벤처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면 벤처의 실패는 그리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실패한 벤처는 과감히 정리돼야 한다. 통상 창업 후 2년 내에 특별한 결과물 혹은 시제품이 없고 매출도 발생하지 않는 벤처라면 정리돼야 한다. 벤처기업가 또한 창업 후 일정기간 내에 경영 계획대로 회사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솔직히 실패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래가치 운운하며 계속 투자자를 모으고 무작정 시간을 끄는 것은 본인과 투자자 모두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실패한 벤처에 대한 빠르고 효과적인 청산과 재투입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빨간불이 들어온 벤처들을 알려주는 웹사이트의 활성화가 필요하며, 잘 짜여진 팀워크의 엔지니어팀은 새로운 벤처 혹은 유망한 다른 벤처에 재투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도 벤처 창업을 지원한 것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벤처 청산 또한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실패한 벤처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자신에게 있다. 요즘 코스닥의 주가가 내리면 해당 기업의 투자자가 전화로 항의와 욕설을 하는 것이 다반사인 것이 우리의 투자 문화인데 앞으로 실패한 벤처에 대해 투자자들이 어떤 추태를 부릴지 매우 걱정된다. 묻지마 투자를 하면서 투자실패의 원인을 벤처기업가에게만 돌린다면 모험심이 강한 벤처기업가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실패한 벤처사업가를 과거 부도 기업인 대하듯 한다면 튼튼한 벤처산업 인프라를 기대할 수 없다. 벤처는 아이디어와 패기 있는 젊은 기업인들에게 투자한 후에 성공한 경우에만 엄청난 투자 이익을 회수하는 기본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벤처의 실패는 돈을 빌려 사업을 하던 기존 산업 모델의 실패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제2의 정보화 산업 혁명의 입구에서 한국이 아시아의 벤처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다. 한국의 벤처 인프라가 건강해져 2000년대 국부 창출의 제1원천이 되길 바란다. 아니 그렇게 돼야만 한다.

김형주(서울대 교수·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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