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이규미/부부싸움이 문제아 만든다

  • 입력 2000년 2월 6일 19시 49분


한 남학생이 상담실에 찾아와 “중대한 결심을 앞두고 몹시 망설여진다”고 말을 꺼냈다. 중대한 결심이란 가출이었다. “집을 나가고 싶은데 대학진학이 걱정이에요.” 이내 학생의 얼굴이 설움으로 일그러졌다.

“저런! 뭔가 아주 힘든 일이 있는 것 같구나.”

“부모님 사이가 너무 나쁘세요. 이혼했다가 다시 결합했는데 여전히 큰소리내며 싸우세요. 어제 참다 못해 아버지한테 마구 덤볐어요. 저까지 성격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 같아요. 집에 있고 싶지 않아요.” 학생은 싸우는 두 분 모습을 보며 하루하루 지내는 게 지옥 같다고 말했다.

상담실을 찾는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의 불화로 인한 불안감을 호소한다. 부모의 싸움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떠는 자신을 구제할 방법으로 집을 나가 버릴까 하는 생각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많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에 이르면 충동적으로 가출을 결행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시종합상담실의 98년 조사결과에서도 부모의 자녀에 대한 관심도보다 부부간 친밀도가 청소년 자녀의 심리적 안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는 부부간에 폭력 폭언 기물파괴 등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을 사이에 두고 패가름을 하는가 하면 상대 배우자를 무자비하게 깎아내린다. 어린 자녀들에게는 폭력적인 부부싸움이 ‘천지가 뒤흔들리는 것과 맞먹는 공포’로 느껴지고 오랫동안 불안한 기억으로 남는다.

“저러다 아빠가 엄마를 죽이면 어쩌나 밤새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두 분이 이혼하면 누구랑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 차라리 죽어버리자고 결심했다.” 상처받은 젊은이들로부터 흔히 듣는 어린 시절 기억이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잃지 않고 안정감을 유지하려면 부부 불화는 가능하면 부부간 문제로 끝나야 한다.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보다는 부부만의 시간과 장소를 갖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모의 감정적 절제와 적절한 표현방식도 자녀보호의 필수항목이다.

청소년들에겐 괴로움과 불만을 솔직하게 부모님에게 말씀드릴 것을 권한다. 그리고 부모의 문제와 자신을 분리시키는 연습,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목표 혹은 바람을 정하고 조금씩 실천해 가는 방법을 권하기도 한다.

양부모 가정 외에도 이혼가정 편부모가정 재혼가정 독신가정 공동체가정 소년소녀가장가정 등 가정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평균적이지 않거나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에 대해 배타적이어서 어른들에 의해 피해자가 된 청소년들에게 실패감을 안겨주는 요인이 된다. 어떤 가정의 형태 속에서 살아가든 청소년들이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고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사회가 포용해 줘야 한다.

이규미<서울특별시 청소년종합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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