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큰 박수와 작은 염려

  • 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01분


‘선배님 힘내세요.’

80년대 초중반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최열씨는 사흘이 멀다하고 명동성당과 서울중부경찰서 앞에서 고독하고 힘겨운 시위를 벌였다.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당시 그는 정부와 대기업에 의해 저질러지는 환경파괴를 고발하고 작업장의 유해환경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주장하며 메아리 없는 외침을 계속했다. 당시 그의 가두투쟁을 취재하던 일선 사건기자들은 그에게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속삭이기도 했다.

97년1월 중순 타이베이시의 한복판인 대만전력 건물 앞에는 수십명의 보도진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 한국인 대학교수가 삭발을 하고 있었다. 젊고 잘생긴 얼굴에 매우 잘 어울리던 그의 웨이브진 머리칼이 무참하게 깎여 나가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바로 녹색연합의 장원 사무총장이었다. 당시 그는 대만측이 핵폐기물을 북한에 수출하려는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이 단체의 회원들과 대만을 방문했다. 대만은 그 뒤 핵폐기물의 북한 수출을 포기했다.

NGO. 비정부기구 또는 시민단체. 그 성격상 정부조직이나 기존 사회에 대항해 활동할 수밖에 없어 지난날 시민단체 활동이 반정부활동쯤으로 인식되던 때도 없지 않았다. 그 열악한 시기에 시민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명감과 자기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시민의 권익과 인권을 지켜왔다.

이제 시민단체는 단순한 민간 단체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분명한 한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벌이고 있는 낙천 낙선 운동은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대거 동참하면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날 그들이 벌였던 외로운 투쟁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오늘 그들의 성취에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더 이상 시민단체를 찬밥 취급하는 곳은 없다. 일종의 면피성 의도도 있겠으나 정부부처와 지방정부들이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 시민단체 간부들을 심의위원회에 포함시키는 것은 상식처럼 되어 있다. 시민단체 간부들의 위상도 옛날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히려 그 때문에 염려가 생길 정도다.

얼마전 모 시민단체의 간부들은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를 방문했다가 청사 경비전경의 태도가 불손했다는 이유로 장관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자신들을 몰라본 데 대해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이 당시의 상황을 지켜본 사람의 전언이다. 또 시민단체의 최근 활동에 대해서도 본의와는 달리 너무 정치세력화하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우려도 없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은 앞으로도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시민운동이야말로 시민의 권익운동이며 일종의 사회정의 실현운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계속적인 지지와 신뢰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지지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방법-그것은 더욱 겸손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지는 것뿐이다. 항상 그렇듯이 박수 소리가 요란할 때가 가장 긴장해야 할 때다.

정동우(사회부차장)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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