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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28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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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확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선거구수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선거구당 유권자수의 편차를 줄이는 일에 있다. 선거과정에서 표의 등가성을 유지하는 일은 선거의 정당성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적 요체이지만 의원정수를 줄이거나 늘리는 일은 대의과정의 효율성 정도를 좌우하는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원회는 선거구수를 줄이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반면에 현재의 인구편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최소 기준율을 지키는 수준에서 안주하고 말았다.
그런데 선거구간 인구편차는 개별 선거구의 존폐나 경계 획정에 당연히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정파간 이해를 달리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수준에서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유지하고자 할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더 나아가 일단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인정하기로 한다면 왜 2대1이나 3대1은 안되며 3.88대 1이나 4대 1이 옳은지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논거를 제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구편차를 허용하는 일 자체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반할 뿐만 아니라 인구편차의 정도를 정하는 작업이 결국은 편의적 발상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하여 선거구간 인구편차율에 대해 정파간 합의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어느 선거구에 왜 얼마 정도의 인구 편차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선거구확정에 대한 정파간 합의의 용이성을 위해서도 선거구간 인구편차는 최대한 줄여야 하며 이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다루었어야 옳다.
가장 이상적인 의원정수가 얼마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분명한 잣대가 개발되어 있지 않다. 당시 유권자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승인하고 수용하느냐가 의원정수의 적정성 여부를 결정짓는 척도라면 척도다. 그런 점에서 선거구 수를 정하는 일은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판단과 선택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정하는 문제는 과학적 논거없이 정치적 조정만으로 합의점에 이르러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위원회는 후자를 다룸에서도 과학적 논거에 기조하지 않았다. 선거구 경계를 확정하면서 유권자 수는 물론이고 그 지역이 농촌이냐 도시냐를 감안하고 선거구의 지리적 규모도 반영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대체 하나의 문제를 다루면서 두 개 이상의 척도를 동시에 적용하겠다는 것부터가 자의적 판단과 정치적 조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백보를 양보해도 농촌이나 넓은 선거구에서 도대체 사람말고 또 무엇을 대표하자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결과 정파간 이해관계가 점예하게 대립되는 상황하에서는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설득하고 승복시킬 수가 없었다.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운영과정이 이랬던만큼 그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정파가 생겨날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나 지금은 위원회의 결정을 재론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더욱이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참여자들이 제안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공언했던 기구다. 입법과정에서 위원회의 제안이 외면되거나 훼손될 위험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아무리 법적 구속력이 없더라도 원내 정파의 대표가 모두 참여해 얻은 결론인만큼 존중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는 때가 아닌가. 정파간 이해득실 차원을 떠나 정치권 전체의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다.
박재창(숙명여대·의회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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