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대기업 은행소유]최정표/경제독식 심화

  • 입력 2000년 1월 26일 19시 08분


《재벌의 은행소유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부처간에도 견해가 다르다. 강봉균 전 재경부장관이 재임시 재벌의 은행 소유를 단계적으로 허용할 방침을 시사했으나 전윤철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찬성론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화된 은행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금융시장 왜곡과 국가경제의 재벌 독식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반대론도 거세다.》

비은행 금융권은 이미 재벌이 직접 지배하고 있다. 일부 지방은행도 재벌의 계열기업으로 돼 있다. 재벌이 금융기관을 거느리려 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수익성 때문이 아니라 그룹내 다른 기업을 위해 금융기관을 사금고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 소속 금융회사들이 재벌의 돈줄이 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재벌은 한 사람이 지배하는 배타적 기업그룹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기업들은 총수와 그 가족의 기업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 들어 있는 금융계열회사는 총수의 사금고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까지도 재벌들이 소유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금융산업 전체를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은행은 비은행 금융기관과 달리 신용창출을 하는 금융기관이다. 비은행금융권의 재벌 지배에 의해서도 금융시장의 왜곡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은행까지 재벌이 소유한다면 한국경제는 완벽하게 소수의 대재벌, 더 나아가서는 소수의 재벌가문이 지배하는 경제로 전락할 것이 틀림없다.

은행은 자원 배분의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기관이다. 은행이 특정 재벌의 계열기업화한다면 자원 배분은 공정한 시장경쟁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재벌의 의도에 따라 재벌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질 것이다. 국가 경제의 재벌독식 현상은 극에 이를 것이 틀림없다.

은행의 경영 건전성은 재벌 소유에 의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관치금융의 근절과 전문경영인의 지배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다. 이는 이미 선진국에서 입증됐다. 은행이야말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하고, 그래야만 한국에서도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활성화되는 금융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최정표(건국대 교수·경실련 정책협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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