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세계화 위협하는 '다보스 포럼'

  • 입력 2000년 1월 24일 19시 10분


《동아일보는 제휴지인 미국 뉴욕타임스에 연재되는 폴 크루그먼 미 MIT대 교수(47)의 칼럼을 이번 주부터 요약 소개하기로 했다. 크루그먼은 94년 포린어페어즈지에 기고한 ‘아시아 성장의 신화’란 제목의 논문에서 일찍이 아시아 경제 위기를 예견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경제학자. 예일대와 스탠퍼드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지난해 10월부터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서는 2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세계 정재계 엘리트들이 참석하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 연차 회의가 개최된다.

호화판 파티에 세계의 내로라하는 갑부들이 아름다운 부인을 대동하고 나타나 고위관리 정치인 지식인들과 수다를 떠는 이 포럼의 한 장면은 ‘새 세계질서’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가운데 정수를 모아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Globalization)를 비현실적인 세계주의자들이 꾸며낸 음모라고 믿는 사람들은 다보스 포럼을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세계화를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여기는 나조차 포럼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보스 맨’이 활약하고 있는 세계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홍보상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화는 부를 증대시키지만 부의 분배가 불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자본의 도입에 따라 근로환경이 좋아진 개발도상국 근로자, 기술과 자본을 소유한 선진국의 갑부와 지식인들은 세계화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는 세계화에 따라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나빠졌다.

이처럼 세계화는 음양이 뒤섞인 그림과 같지만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세계화 덕분에 한국은 유럽 국가들이 300년에 걸쳐 이룩한 발전을 40년만에 달성했고 방글라데시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 사태를 면할 수 있었다. 세계화는 선의가 아닌 영리적 동기에 의해 추진돼 왔지만 각국 정부 및 국제기구의 원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면 세계화를 단순히 자본가가 세계 노동자를 착취하는 수단이라고 믿는 ‘시애틀 맨’은 입에 거품을 물고 항의할 것이다. 시애틀 맨은 많은 국가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하며 대신 다보스 포럼과 같은 모임에서 가난한 국가의 착취에 앞장서는 원흉을 찾으려고 한다.

다보스 포럼 참가자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곤 진정한 악한은 없다. 그들은 우리보다 돈은 더 많을지 몰라도 더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 나쁜 사람들로 비춰지고 있다는 홍보상의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다보스 포럼의 목적인 세계화를 위협하고 있다. 올해 다보스 포럼 참가자들이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정리〓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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