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15세 박영훈군 8전9기로 '20세기 마지막 프로입단'

  • 입력 2000년 1월 17일 20시 06분


프로 입단이 ‘공룡이 바늘구멍’ 통과에 비유하면 과장일까? 프로 9단의 바둑에 익숙한 보통 사람은 뼈를 깎는 ‘입단(入段)’의 고통을 모른다.

지난해 12월 85회 입단대회에서 8전9기로 프로 입단에 성공한 ‘20세기 마지막 입단자’ 박영훈군(15·충암중2).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 95년 입단대회에 첫 출전한 뒤 8번 떨어지고 9번만에 입단했다”면서 “마침내 밀린 ‘숙제’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바둑의 실력을 수졸(守拙·초단)에서 입신(入神·9단)까지 9단계로 구분한 ‘위기구품(圍棋九品)’에 따르면 초단은 ‘졸렬하나마 제 스스로는 지킬 줄 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프로 입단의 문은 정말 좁다. 기사들의 세계에서 프로입단은 ‘사법고시’에 비유된다.

바둑 꿈나무인 10대부터 프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20대 이상의 ‘나이든’ 아마추어 까지 매년 수백명이 입단 대회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 중 한해 세차례 입단대회를 통해 8명만이 ‘바늘구멍’을 통과할 뿐이다. 실제 한국기원 소속의 연구생 중 상위권은 프로에 입단하지 못했지만 프로 6,7단의 실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군도 97년 최연소 아마대회 우승(만11세), 98년 최연소 아마 7단과 아마대회 4관왕 등 ‘기록의 소년’이었지만 번번히 입단에는 실패했었다.

그는 “프로 입단으로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 등 당대의 고수들과 바둑을 둘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면서 “이들을 반상에서 만나 배울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그가 바둑에 입문한 것은 6살 때인 90년. 아마 5단이자 SBS영화팀장인 아버지 박광호씨가 숫자에 밝은 아들의 기재(棋材)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박영훈군은 “하루 평균 10시간, 어떤 때는 17시간까지 바둑 공부에 매달리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다”면서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좋은 기보를 남기고 싶다”고 어른스러운 포부를 밝혔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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