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운전중 휴대전화 사용' 음주운전만큼 위험

  • 입력 2000년 1월 11일 19시 52분


휴대전화 가입자가 늘면서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를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핸들을 잡은 채 통화를 하는 운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발의된 ‘휴대통신기기의 사용 제한에 관한 법률’은 1년 가까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휴대전화 가입자는 지난해말로 23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2명 중 1명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사고실태▼

7일 오전 울산 북구 염포동 해안도로에서 15t 트럭을 운전하던 권모씨(46)는 휴대전화를 받으려다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또 이날 울산 울주군 청량면 상남리에서 김모씨(35)는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면서 운전을 하다가 정차 중이던 택시를 들이받았다.

11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99년 1월부터 6월까지 휴대전화 사용과 관련된 교통사고로 보험금을 청구한 경우는 242건이었다. 이는 98년 같은 기간(119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

경찰의 사고통계도 건수는 이보다 적지만 역시 휴대전화 사용에 따른 교통사고의 급증 추세를 보여준다. 경찰청에 따르면 96년 전국에서 8건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교통사고가 97년 87건, 98년 114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이로 인해 96년부터 3년간 7명이 숨지고 206명이 다쳤다.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음주운전 만큼 위험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팀은 97년 남녀 운전자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현행 국내 음주단속 기준(0.05%)의 2배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1%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또 미국의 고속도로 교통안전청은 최근 운전 중 휴대전화 통화시 교통사고 발생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5∼6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시민들도 대부분 이런 연구결과에 공감하고 있다.

손해보험협회가 지난해 8월 만 20세 이상 남녀 운전자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거의 모든 응답자(98.5%)가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으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대답했다.

▼법적 규제 논란▼

이렇게 사고가 빈발하고 사고 위험을 지적하는 연구 조사결과가 잇따르자 휴대전화 사용을 법적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최근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규제법 제정을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또 지난해 2월 국민회의 김병태(金秉泰)의원 등 국회의원 25명은 차량을 운전할 때와 공공장소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최고 10만원까지 벌금을 물리도록 한 ‘휴대통신기기의 사용 제한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하지만 현재 이 법안은 ‘휴대전화 사용자의 상당수가 법적 규제에 반대하고 있으며 통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일부 정치권의 반대에 밀려 국회 정보통신과학기술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채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외국의 규제 사례▼

최근 미국 등 외국의 여러나라는 ‘사용자제 권고’에서 ‘법적 규제’로 방침을 바꾸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는 지난해 9월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위반시 최고 1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지난해 11월부터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위반시 범칙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된 도로교통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된 뒤 한달간 휴대전화 사용에 따른 사고는 62건이 발생, 전 달(233건)에 비해 72.4%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싱가포르에서는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적발될 경우 징역 6월 또는 벌금 70만원의 처벌을 받는다. 말레이시아의 경우는 징역 3월 또는 27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허억(許億)안전사업실장은 “운전자 스스로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자율규제가 안돼 사고로 생명을 잃는 것보다는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더라도 안전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