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Y2K 과잉대응론

  • 입력 2000년 1월 5일 00시 28분


1997년 11월 우리나라가 IMF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뒤의 얘기다. 국내 일부 기관들은 “봄부터 환란 가능성을 경고하는 보고자료를 정부측에 올린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기관에 묻고 싶었다. “범국가적으로 특단의 비상대책을 마련해 실행하지 않으면 IMF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는가. 그렇게 믿었음에도 정부고위층이 위기론을 싫어한다고 해서 입을 다물어버렸다면 이는 대죄에 해당한다. 사실은 관측에 크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외환불안도 우려된다’는 정도로 얼버무린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다가 막상 환란이 터지니까 마치 확실하게 예상했던 것처럼 말하는 건 아닌가.”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온 나라가 위기 탈출에 매달렸던 지난 2년 사이에는 금융대란설이 몇차례 나돌았다. 결과적으로 대란은 없었다. 대란설을 꺼냈던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실제로는 별문제가 없더라도 위험성을 경고해두는 게 유리하다고 계산했는가. 97년 환란 조짐을 감지하지 못한 죄도 있으니….”

하지만 대란설 유포가 죄에 해당하는지 어떤지는 애매하다. 대란설이 금융시장 불안을 증폭시켰고, 그 바람에 시장안정을 위한 국민적 부담만 더 키웠다는 유죄론이 있을 수 있다. 반면에 대란 경고가 있었으니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결국 시장위기를 잠재울 수 있었다는 견해도 공존할 수 있다.

Y2K(컴퓨터 2000년 연도인식 오류)문제가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사고 없이 해소되는 양상이다. 그러자 Y2K 대란을 걱정해 구입한 비상식량과 연료 등을 반품하는 역(逆)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Y2K 공포가 세계 정보통신산업을 주도하는 미국과 미국컴퓨터업계에 의해 과장돼 일부 컴퓨터업체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궁금하다. 오늘이 2000년 1월5일이 아니고 1999년 12월26일이었더라도 이같은 Y2K 과잉대응론이 나왔을까. 지금에야 Y2K문제를 막기 위한 투자와 노력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개인 기업 및 국가는 ‘최적의 대응 수준’을 계측할 능력이 없는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배인준 <논설위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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