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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2월 27일 20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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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대한항공 8509화물기가 추락한 뒤 대한항공의 현지 기자회견에서 영국기자들이 쏟아낸 질문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심지어 “군 출신 조종사들의 모험심이 안전사고를 계속 불러온 것 아니냐”는 인신공격형 질문도 있었다. 언론보도 역시 싸늘했다. 대한항공에는 ‘지난 20년간 700여명이 숨진 항공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항공사 중 하나’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영국소비자협회도 ‘사고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면서 보이콧에 나섰다. 대한항공측은 이처럼 ‘30년 공든 탑’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전에 두고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항공의 한 중역은 “불모지인 항공산업에 뛰어들어 피땀흘려 세계 10대 항공사 반열에 들었는데 이젠 아무도 과거를 기억해주지 않는다”며 한숨을 토했다.
70년대초까지 베트남에서 번 달러로 국내기업 중 가장 자금력이 풍부했던 한진그룹이 금융업이나 제조업이 아닌 항공산업에 뛰어들었던 것은 분명 용단이었다. 그러나 잇단 사고와 탈세 등의 악재로 이제 그 의미도 퇴색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위기 인식 못지않게 변화를 적극 수용하려는 모습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사고현장의 직원들은 한결같이 “이제 질적으로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외국언론의 비판도 ‘죄인이 무슨 할말이 있느냐’며 경청하는 자세였다.
밀레니엄의 첫 시간이 시작되는 영국에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세계인의 날개로 거듭나는 대한항공을 기대해본다.
권재현<사회부>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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