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한젬마/영화보듯 그림보러 오세요

  • 입력 1999년 10월 22일 19시 15분


서울 인사동에는 수많은 그림 전시장이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인사동에 가는 사람은 드물다. 전시된 그림들을 감상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화가랍시고 전시회를 열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이유를 잘 몰랐다. 다만 사람들이 많이 와서 구경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왜 안 올까 속상했을 뿐이었다.

내게 그림은 오랜 친구처럼 가까운 존재이다. 내가 외로울 때면 그 외로움을 달래주고, 사랑에 빠지면 소중한 사랑을 잘 키워가라고 북돋워 준다. 그림은 내 마음만큼 보여주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날 외면하지 않는 소중한 벗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림을 멀리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수밖에.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미술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면서 만난 사람들,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계에 종사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내게 이런 질문들을 했다. “전시장에 갈 때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하나요?” “그림을 아무리 봐도 모르겠던데요. 어떻게 보면 되는 거예요?”

일반인이 가진 미술에 대한 선입견의 벽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나에게 그림이 어렵다고 고백하는 이들은 어느 정도 그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 나아가 사는 데 그리 중요하지 않은 관심 밖의 문제라고 치부한다.

흔히 우리는 그림이 있어야 할 곳으로 화랑과 미술관을 떠올리지만 지금처럼 흰 벽면에 눈높이를맞추어 그림을 걸고 감상자를 기다리는 형태가 성립된 것은 1930년경이다. 그림의 역사는 길지만 그 대다수가 특정 개인을 위해 제작되었다. 화가에게 표현의 자유가 부여되고 누구나 그림을 감상할 수 있고 구체적으로 그들을 이어주는 화랑이 생겨난 역사는 짧다. 그림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갈망으로 세워진 화랑이 도리어 외면당하는 현실. 넘치는 자유가 오히려 감당하기 벅찬 것일까.

요즘 그림들이 엄숙한 화랑을 탈출해서 길거리로 전철역으로 나서고 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어쨌든 환영할 일이다. 사람들에게 그림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무턱대고 그림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림을 즐기자.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음악을 듣는 것처럼, 기분에 따라 보는 영화가 틀리고 듣는 음악이 틀린 것처럼 그저 기분에 따라 그림을 느끼자.

화가가 의도한 대로 그림을 읽을 필요가 전혀 없다. 같은 음악도 주변 상황이나 심리적인 변화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듯이, 같은 문학 작품도 읽을 때마다 다른 내용을 경험하게 되듯이 한 그림에 대한 정답을 찾으려하지 말자. 그렇게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림을 보다 보면 유난히 끌리는 그림이 생길지도 모른다. 왜 하필 그 그림이냐고 누군가 당신에게 묻거든 당당하게 말하라. “좋으니까요.” 그 한마디면 된다. 그림풍이 어쩌니, 그 세계가 어쩌니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인 것이다.

연인과의 데이트나 가족나들이를 이왕이면 그림이 있는 곳에서 하면 어떨까. 아직 서먹서먹한 연인들이나 가족간의 대화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한젬마 <서양화가·미술전문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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