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20세기/외계인]친구일까? 침략자일까?

  • 입력 1999년 10월 21일 19시 10분


이보다 더 위험할 순 없다. 저 압도적인 덩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눈, 그리고 산성의 피를 지닌 외계인과 만나 인터뷰를 해야 한다니.

그러나 외계인들은 뜻밖에도 외교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그들도 무언가 바뀔 때가 온 것이라 여긴 탓일까? 먼저 거대한 문어발의 화성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왜 20세기의 영화들에서 지구를 찾은 외계인은 그토록 지구인에게 적대적이었나?

그는 담담하게 영화 ‘달세계 여행’(1902년)을 통해 처음으로 외계인과 지구인의 만남이 그려졌을 때를 회상했다.

“처음부터 인간들은 뭔가 두려운 존재를 찾았지. 과학이 발전하면서 당신들이 믿던 신이라는 존재는 힘을 잃어 갔어. 자연히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갔고, 그 때 나타난 외계인이 당신들의 새로운 ‘악마’가 됐을 뿐이야.”

―그렇지만 당신들이 끊임없이 지구를 침공해온 것은 사실이 아닌가? 50년대의 B급 SF영화들에서도 외계인은 항상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였다. 80년대 ‘프레데터’의 엽기적인 인간 사냥, 90년대 ‘인디펜던스 데이’와 ‘제5원소’의 가공할 침공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하지만 나까지 그렇게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커다란 눈망울의 ET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며 반문했다. 무심결에 손가락 끝을 맞추어 인사하며 대답했다.

―하긴 그렇지.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77년)나 ‘E.T’(82년)에서 외계인도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었어. 게다가 ‘코쿤’(85년)의 외계인은 노인을 회춘시켜주기도 했고. 하지만 그건 잠시동안의 유행이 아니었나.

“지구인들 중에 바보만 있는 건 아니군, 그래. 우리들은 언제나 지구인들을 감시하며 서서히 지배의 손길을 벌려왔어.” 경악스럽게도 그는 인간의 형상을 한, 그러니까 ‘신체 강탈자의 침입’시리즈(56,78,93년)에서 지구인의 몸을 빼앗은 외계인이었다.

“하지만 이건 알아두어야 해. 외계인들이 모두 한 편은 아니라는 것을. 그들 중에는 지구인들 속에 숨어사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자들도 있어.”

그러면서 그는 ‘맨 인 블랙’에서 이미 밝혀진 것 이외에 세계 각국의 요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 많은 외계인들의 공개적인 지구 생활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들마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에얼리언’의 무적 생명체가 곧 지구를 찾아올 거야. 우리도 지구인과 힘을 합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네.”

이명석(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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