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주가조작' 개미군단이 나서야 재발 막는다

  • 입력 1999년 10월 20일 19시 33분


‘주가조작’이냐 ‘주가관리’냐를 놓고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됐던 현대증권 이익치(李益治)회장 재판이 단 두차례의 공판으로 끝나게 됐다. 이처럼 이 사건 1심 재판이 ‘속전속결’로 끝나게 된 것은 이회장이 1심에서 ‘이의제기’를 계속하기 보다 1심 재판을 빨리 끝내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2심에서 본격적인 법리논쟁을 벌이려는 의도로 법조계는 풀이하고 있다.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

주가조작 범죄에 대한 우리 법원의 양형은 관대한 편. 증권거래법은 주가조작 범죄자를 10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나 96년 후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돼 1심이상 재판이 끝난 피고인 50명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13명에 불과하다.

법무부 국감자료에 따르면 나머지 22명이 집행유예를, 14명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구속 6개월을 전후해 풀려났고 1명은 무죄를 받았다.

증권거래소 김정수(金正洙)차장은 “증권거래법 위반사범은 재판을 통해 처벌하기보다는 투자자들이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이 범죄의 재발을 막는데 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민사소송 전망▼

참여연대는 12일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으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 44명을 모아 서울남부지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주가조작이 진행중이던 지난해 7월부터 올 4월사이에 현대전자주식을 매매한 사람들로 “정상가격보다 비싼 주당 평균 2만7460원에 사 8억1000여만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일단 1인당 150만원씩을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소송은 주가조작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90년 투자자 한 명이 증권회사를 상대로 1억여원을 청구했으나 청구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 원고에게 입증 책임

이번 소송에서는 누가 이회장과 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입증할 것인지에 대한 ‘입증책임’과 ‘배상액 산정’의 문제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입증책임’과 관련해 현행 법은 권리를 주장하는 원고측에 입증책임을 지우고 있다. 그러나 이종학(李鍾鶴)변호사는 “주가조작의 경우 불법행위의 요건인 ‘목적성’은 행위자의 내심이고 주가조작을 밝히는 증언이나 서류를 구하기 힘든 만큼 원고측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주식매매를 통해 실질적 이익을 가진 사람이 비정상적인 거래 등을 한 ‘정황증거’가 있으면 주가조작을 했다고 보고 피고측이 ‘조작할 목적과 행위가 없었음’을 입증하게 한다는 것.

증권거래소 김차장은 “미국에서는 주식을 산 가격과 당시 주식의 ‘진정한 가치’의 차액을 배상토록 하는데 ‘진정한 가치’란 계산하기 어려운 개념이어서 원고에게 주식 매입가격을 되돌려 주는 방법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제▼

이번 소송은 시민단체 법률가들이 피해자를 모아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한국 공익소송의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다.

현재 공익소송을 주도하는 시민단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원고를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것. 참여연대도 “많은 손해를 본 것도 아닌데 소송까지 내기는 귀찮다”는 시민들의 인식때문에 44명을 구하는데 그쳤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집단소송이란 다수 피해자들이 원인이나 쟁점이 같은 소액의 손해를 입은 경우 피해자중 한명이 소송을 내 전체 손해액을 배상받은 뒤 나눠갖는 제도.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에 계류중인 ‘증권집단소송에 관한 법률’로 증권거래 피해에 이 제도를 시범 실시하기로 했지만 주가조작 피해는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참여연대 김주영(金柱永)변호사는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기업이나 회계사의 잘못된 공시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만 집단소송을 낼 수 있다”며 “주가조작 전반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석호·김승련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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