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은령/獨도서박람회 '초라한 한국'

  • 입력 1999년 10월 15일 18시 45분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서 4년째 출판사 부스를 운영하는 한국의 K사장. 첫날부터 기가 죽어 있었다.

“4년째 참가하지만 저작권을 판 것은 겨우 소설 1종뿐이에요. ‘세계’의 벽을 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98년 처음으로 박람회장 내에 한국관이 세워져 해냄의 ‘태백산맥’과 비룡소의 그림동화 ‘아씨방 일곱동무’ 등의 저작권 거래가 성사됐지만 아직은 한국 출판물의 저작권판매는미미한실정.

그러나 구매에 관한 한 한국은 구미 출판계의 ‘큰 손’이다. 이번에도 500여건의 저작권을 사들일 전망이다. 건당 계약금을 최소금액인 1000달러로만 계산해도 50만 달러(약 6억원) 이상이 외국으로 흘러 나가는 것이다.

번역은 하지 말고 국내 저작만 육성하자는 것이 글로벌시대의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일단 한국관을 세움으로써 국제 도서시장에 명함은 내밀었다. 이젠 경쟁대열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수 밖에 없다. ‘틈새 공략’이 한 대안일 수 있다.

바로 옆 일본관의 경우 일본 출판계 1위인 고단샤(講談社)를 비롯한 유수의 출판사가 만화로 부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만화만큼은 일본이 단연 1등인 것이다. 한국관에서도 외국인의 발길이 잦은 곳은 한국미술 전문출판사인 열화당이나 한국 건축가들을 다룬 ‘건축세계’ 등의 부스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외국인에게 우리 책을 알리는 첫 단계인 영문 카탈로그 제작도 부실하다. 제대로된 카탈로그를 만들려면 적어도 수백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한 출판인은 “출판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한국책의 영문 데이터베이스화를 지원해 주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정은령〈문화부〉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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