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워크맨 신화]소니창업자 故 모리타 아키오

  • 입력 1999년 10월 13일 19시 34분


3일 일본의 전 언론은 한 일본인의 죽음을 두고 ‘일본의 한 시대가 갔다’고 애도를 표했다. 전후 제대로 된 나사 하나 구하기 힘들었던 일본을 전자대국으로 이끈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 명예회장이 폐렴으로 사망한 것. 세계 최고의 제조국가로 성공했지만 디지털경제 적응에 실패, 침체를 겪고 있는 상태였기에 일본인들의 감상은 더했다.

모리타는 기술에 밝은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탁월한 마케팅 능력으로 더 유명하다.

모리타 스스로 “소니의 전설이 된 ‘워크맨’은 시장조사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상업성이 없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듣고싶어한다는 욕구에 주목, 워크맨을 만들어내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8㎜홈비디오까지 소니의 히트 상품에는 모리타의 창의적인 마케팅 능력이 번득인다.

그는 또 도전정신으로 가득찬 벤처기업가였다. 그는 패전 이후 도쿄의 한 골목에서 한국돈 6만원 가량으로 이부카와 의기투합, ‘도쿄공업통신’을 설립해 93년 은퇴할 때까지 소니를 자산가치가 370억달러가 넘는 다국적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일찍이 국제화에 눈을 떠 일본사회의 약점을 통렬히 지적하면서도 서구인들에게는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는 60년대에 이미 ‘학력무용론’을 내세워 사원모집 때 대학을 구별하지 않고 오직 실력과 창의력만 보고 사원을 뽑았다. 또 그는 일본의 폐쇄성을 공격하면서 일본의 해외기업에 현지인을 과감히 채용하는 등 현지화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모리타는 “미국의 경영인들은 종업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따끔하게 꼬집고 89년 보수논객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郎)와 공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발표하는 한편 컬럼비아 영화사를 사들여 일본인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이병기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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