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홍관/'건강담배 市販' 기만 아닌가

  • 입력 1999년 9월 14일 18시 38분


한국담배인삼공사는 타르와 니코틴을 초저로 낮춘 ‘건강담배’를 내년 초부터 시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담배는 개비당 타르 함량이 1㎎, 니코틴은 0.1㎎으로 일반 담배보다 훨씬 낮다.

그렇다면 담배인삼공사는 국민들에게 7분의 1이나 덜 해로운 담배를 보급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인가. 일견 그럴 듯 해보이지만 진실을 들여다보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선 ‘건강담배’라는 표현부터 국민을 기만하는 말이다. 아무리 함량을 낮춘다고 해도 발암물질은 발암물질일 뿐이다. 마치 독극물이 든 음료를 주면서 독극물 함량을 낮추었다고 해서 ‘건강음료’라고 시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초저 타르 니코틴 담배’도 ‘죽음의 담배’‘질병의 담배’일 뿐이다.

흡연자가 타르와 니코틴을 낮춘 담배로 바꾼다해도 그 사람은 건강이 나빠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담배를 핀다는 것은 바로 담배에 들어 있는 니코틴에 중독돼 있는 상태이다. 담배를 피지 않으면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마약을 찾듯이 담배를 찾게 된다. 흡연자는 니코틴 농도가 낮아지면 머리는 멍해지고 안절부절 못하고 화를 잘내고 우울해지고 불안해지는 금단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다시 담배를 찾게 된다. 따라서 ‘초저 타르 니코틴 담배’를 피는 사람은 니코틴이 원하는 만큼 없기 때문에 부족한 니코틴을 보충하기 위해 더욱 깊이 빨아들이게 되고, 더 자주 담배를 피워 결국 원래 중독된 만큼 니코틴과 타르를 빨아들이게 된다. 담배 사는 돈만 더 많이 들 뿐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초저 타르 니코틴 담배는 담배인삼공사 관계자가 고백했듯이 담배의 맛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널리 이용되지 않는다. 현재 엑스포마일드는 시판 담배중에서 타르 함량이 1.9㎎으로 가장 낮다. 그러나 맛이 떨어져 잘 팔리지 않는다. 새로 보급하려는 담배도 결국 같은 이유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성인과 청소년의 흡연율은 세계 1위이고, 폐암 등 흡연관련 사망자수가 연간 3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흡연으로 인한 경제 손실은 6조원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아직도 정부는 흡연 피해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팔짱을 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한술 더 떠 흡연을 애향운동으로 격상시켜 부추기는 실정이다.

최근에 한 흡연자가 정부를 상대로 흡연 피해 소송을 제기했고 다른 단체들도 유사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담배인삼공사가 할 일은 ‘초저 타르 니코틴 담배’를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담배가 온갖 암 심장병 폐질환을 유발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담배갑에 써 붙여 진실을 알리는 일이다.

흔히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라고 하면 담배피는 습관이 아주 오래된 것 같지만 한국에 담배가 들어온 지 불과 400년밖에 되지 않았다. 모두가 국민 건강을 위해 담배라는 식물을 멸종위기 식물로 보존하게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서홍관(인제대 의대교수·서울백병원 금연클리닉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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