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일본인들의 「속마음」

  • 입력 1999년 9월 8일 19시 24분


권희로(權禧老·71)씨가 한국으로 떠난 7일 오후 기후(岐阜)현에 산다는 50대 일본 남자가 동아일보 도쿄지사에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에서 김희로(金嬉老·권희로)를 영웅이라고 한다는데 정말이냐. 어째서 그가 영웅이냐. 김희로는 일본인을 두 명이나 쏘아죽였다. 그가 돈을 빌린 것은 개인적인 문제다. 그게 원인이 돼서 살인과 인질극을 벌인 사람이 나중에 민족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는 “김희로의 의견에 동조하는 재일한국인이 있다면 전부 일본을 떠나면 될 것 아니냐”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말은 일본언론의 권희로씨 관련보도에도 나오지 않는 평범한 일본인의 ‘속마음’을 내비친 것 같다. 일본언론은 권씨의 31년전 범행을 어떤 식으로도 평가하지 않고 있다. 가석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이런 저런 사정이 있었다고만 보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권씨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대한 보도태도도 그렇다. 잘못됐다거나 정도가 지나치다는 표현은 없다. 슬그머니 비판해도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나 재일한국인의 말을 빌려 비판하고 있다. 일본언론의 이런 태도는 권씨의 주장에 일부 수긍할 대목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31년전에 권씨를 ‘라이플 마(魔)’로 몰아붙였던 데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본인은 일부 한국인이 권씨를 지사나 열사처럼 대접하고 있는 것까지 수긍하는 것 같지는 않다. 권씨를 어떻게 대접하든 관여하지 않겠다는 냉정한 태도가 일본사회의 주된 분위기다. ‘김희로 사건’에 대한 일본인의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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