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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9월 2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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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비행기를 팔아 챙긴 이득의 2배에 해당하는 2180만 달러의 형사상 벌금을 물었다. 아울러 300만달러의 민사상 배상을 했다. 회사의 손실은 금전적 손해만이 아니었다. 2명의 록히드사 직원이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1명은 수감됐다. 무엇보다 회사의 이미지 실추가 엄청난 손실이었다.
이같은 소송은 한국 기업들에도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뇌물방지협약에 따라 한국에서도 2월부터 ‘국제상거래에서의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해외뇌물방지법)이 제정 시행되고 있다. 국내 경제질서도 국제적 법률기준에 맞춰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뇌물수수관행은 단순한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촌 차원의 강력한 부패추방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부패문제를 투자 경쟁 노동 환경과 함께 5대 이슈로 다룬다. 국제 상거래에서 뇌물수수관행이 왜 이처럼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됐을까.
뇌물 및 부패행위는 공무원과 정치가의 주머니만 살찌울 뿐 코스트를 높여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과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치며 국제 무역 및 투자에서 장벽으로 작용한다. 변호사 김강원씨는 “부패행위는 뇌물을 제공한 기업이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므로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다”고 말한다.
해외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한국 기업들이 과거의 뇌물수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국제적인 뇌물추방공격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법인이 형사처벌을 모면하더라도 기업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이 징역형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른바 ‘부패라운드’라고 불리는 OECD협약을 유도해낸 미국은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행위를 해외부패방지법 제정 이전부터 독점금지법 증권거래법 등을 통해 규제했다. 그러다 워터게이트와 록히드 뇌물사건을 겪으면서 77년 해외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워터게이트 청문회를 통해 미국 기업들이 닉슨대통령에게 불법선거자금을 지원한 것을 포함해 입찰과 관련해 외국정부의 고위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공개됐다. 그 중 하나가 유명한 록히드 사건.
록히드사가 이면계약을 통해 트라이스타 L1011항공기의 일본 판매와 관련해 약 2500만달러를 리베이트로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론의 압력으로 법무부가 미국기업에 의한 국제적 뇌물사건을 수사했고 이를 계기로 해외부패방지법이 탄생했다. 미국에서 이러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일본 검찰도 수사를 개시해 76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총리를 구속기소했다.
해외부패방지법 제정 이후 뇌물공여죄 위반으로 20여건이 기소됐으며 거의 모두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일부 기업들은 재판과정에서 기업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거액의 유무죄흥정 절차(Plea Bargaining)를 통하여 벌금에 합의한 뒤 사건을 종결했다. 이같은 배경에서 미국은 국제적인 뇌물관행을 근절시키고 국제상거래에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OECD의 뇌물방지협약 제정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뇌물 수수관행은 해외 상거래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외자유치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기업에 대해 강도높게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철저한 뇌물관행의 근절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뇌물 관행이 한국투자를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A사는 세계 각국에서 광범위하게 합작사업을 벌이는 다국적 기업. 몇 해전 아프리카의 한 합작회사 직원이 현지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것이 문제가 됐다.
그 직원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본사의 간부가 미국의 해외부패관행법에 의해 처벌받을 뻔한 사건을 겪었다.
얼마 전 이 A사는 한국에서 합작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는 현장에서 한국측 합작파트너에게 장차 설립될 합작회사의 임직원이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지않도록 보장해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한국에 설립될 합작회사 직원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다 적발된다면 모회사 임직원까지 미국법에 의해 처벌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한국측 합작파트너는 한국법에 의해 운영될 합작회사 직원이 미국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으나 결국 미국측 파트너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LG경제연구원 김도경(金道卿)경제2실장은 “원칙적으로 뇌물을 주지않는 사업관행을 보다 확고히 정착시켜야 하며 뇌물공여방지를 위한 노력을 문서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법을 만들어놓고 장식물처럼 취급해선 안된다. 우리 스스로 법을 존중해야만 외국기업도 마음놓고 국내에 투자하고 사업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다.
지금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뇌물수수관행 퇴치운동은 하나의 법률이 지배하는 지구촌 시장경제의 일원이 되기 위해 모든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준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정의종변호사는 “오늘날 국제 상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들은 자국법 현지법은 물론 하나의 커다란 글로벌 리걸 시스템에 의해 규율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미석기자〉mskoh119@donga.com
▽특별취재팀〓황호택(기획팀장) 고미석(기획팀) 박래정(정보산업부) 홍석민(〃) 신치영(경제부) 이희성(국제부) 김갑식(문화부) 정성희(사회부) 최영훈(〃) 이성주(생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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