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08)

  • 입력 1999년 8월 30일 19시 16분


내가 미경에게 궁금하던 점을 물었다.

송 형은 어디 약속이 있는 모양이던데 넌 같이 안다녀?

송 선배하고 지는 그룹이 다릅니더.

어떻게 다른데?

송 선배는 민투위에 속해 있고예 지는 노학연대 쪽이 아닙니꺼.

아, 그래서 미경이가 학교를 때려 치운다고 그랬구나. 그럼 어디 공장에라두 들어갈 거야?

미경은 까맣고 큰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그렇다는 시늉을 해보였고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 생각에는 미경이가 잘 알고 능률적으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데가 역시 학교일텐데, 공장에 가면 그들에게 무슨 큰 도움이 될까.

지금은예 공장에 들어가 있는 선배들하고 학교 사이를 잇는 역할만 하고 있어예. 하지만 지금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예 노동일꾼으로 시작할 참이라예. 우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가 될라꼬요. 한 일이년 죽어라꼬 일만 해볼 참입니더.

대단하구나….

하면서 나는 말을 흐렸다.

시월 중순 쯤이었을까, 송영태가 여느 때와는 달리 말쑥한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차림으로 불쑥 화실에 나타났다. 그는 늘상 들고 다니던 채권 장사 같은 헌 털뱅이 가죽 가방도 들지 않았고 팜플렛을 쑤셔넣던 보스턴 백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너 웬일이니, 어디 선 보러 가냐?

말 마라. 요샌 토론하구 다니느라구 혓바늘이 돋을 지경이다.

여기 와선 조용해 주기 바래.

우리는 노선투쟁을 시작했어. 설득하다 안되면 밀어붙이면서 지나가야지.

응 근데 요새 미경이가 뜨음 하던데… 보다 안보니까 궁금하네.

걔 부천 가 있어. 일터를 잡았지.

어머, 그러면서 고것이 아뭇소리 없이 사라지다니.

지금 일 배우느라 정신 없을 거야. 아마 내주쯤이면 휴일에 들를지두 모르겠군.

그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공연히 화실 안을 서성대면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의자를 밀어주며 그에게 말했다.

앉지 그래. 내가 불안하니까.

한 형 저녁 먹었냐?

아니, 왜 사줄려구 그래?

내 파트너루 모실려구. 너 일식 좋아하니, 회 사줄게.

괜찮지.

그를 따라 나서면서도 나는 송가의 속셈이 따로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차림새가 어쩐지 튀는 게 아닌가. 거기서 멀지않은 번화가의 뒷골목에 있는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아래층은 스시 바와 식탁이 놓인 홀이었고 두 테이블인가 손님들이 앉아 있었는데 바 쪽에서 뭔가 먹고 있던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우리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무 계단으로 해서 이층에 오르면 복도를 따라서 양쪽에 창호지 미닫이 문이 달린 방들이 잇달아 있었다. 예약된 방에 들어가자 그는 상의를 벗어 걸지도 않고 약간은 긴장된 모습으로 앉았다. 내가 그의 맞은편에 앉으려고 방석을 펴는데 영태가 말했다.

내 옆에 앉어.

술 따라 달라구? 난 앞에 앉아서도 니 잔 받을 수 있어.

여기 좀 앉어.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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