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95)

  • 입력 1999년 8월 15일 18시 45분


지금 그 문 안에서 두 여자가 나오고 있어요. 젊은 여자는 대 여섯 살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손목을 잡고 나오는데 갑자기 실내가 떠나가라고 울음을 터뜨리는 거예요. 나이 든 여자가 함께 울면서 연신 손수건으로 제 얼굴을 닦고 젊은 여자의 등을 두드려주며 달래고 있었어요.

한윤희씨.

잡음이 섞인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나오기에 일어났더니 접수처의 옆 문을 열고 교도관 한 사람이 나와서 손짓하고 있더군요. 나는 가져온 종이 가방을 들고 그에게로 걸어갔습니다. 그는 모자에 금테를 두르고 꽃송이 하나짜리 계급을 달고 있었어요.

오현우 면회 왔습니까?

네, 그런데요.

이리 잠깐 들어오시지요.

그는 나를 사무실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방에는 안락의자와 책상과 기도하는 다니엘의 그림을 나무에 인두로 지져서 그린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구요. 책상 앞에는 젊은 교도관이 뭔가 서류를 펼쳐 놓고 앉아 있었지요. 아마도 그가 나와 주임의 대화를 기록하려는 것 같았어요.

먼저 말씀드리는데 오현우는 중요한 공안수인 관계로 직계가족 외에는 아무도 면회가 안됩니다.

그럴줄은 알았어요. 하지만 저는 이를테면… 약혼자나 마찬가진데요.

법적 근거가 없지요? 우리는 아무런 지침이나 명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 편지나 메모도 전할 수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하고나서 그는 책상 위에서 무슨 기록철을 집어들어 펼치더니 잠깐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찾는 듯했어요.

더구나 공범이나 사건 연루자는 접견 금지인물로 이미 지목이 되어 있습니다. 한윤희씨… 네 여기 있군요. 오현우 은닉건으로 검거되었던적이 있죠?

네, 잠깐 조사를 받았어요.

기소중지 처분을 받으셨군.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분개하거나 노엽지는 않았는데도 무력감 때문에 저절로 눈물이 나오더니 턱 밑에까지 주루룩 흘러내렸지요. 나는 의류가 든 종이가방을 부시럭거리며 들쳐 보였어요.

이건 그이에게 들여보낼 수 있겠지요?

어디 보십시다.

주임이 탁자 위에다 종이가방을 거꾸로 들고 모두 털어 내놓았어요. 겨울 내의며 조끼와 털 세타와 긴 팔 티셔츠 등속을 펼쳐 한 점씩 확인하고나서 그는 내게 영치품 신청서를 내밀었습니다.

신청서를 작성하십시오. 품목은 종류별로 수치를 적으시구요.

나는 그게 당신에게로 가는 편지이기라도 한 듯 정성스럽게 글씨를 또박또박 적어 나갔습니다. 글씨를 쓰는 동안 그가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어요.

이제 돌아가시면 내가 오현우씨를 이리로 불러다가 물건을 내줄 것입니다. 댁에서 오셨단 얘기도 해주겠습니다.

반짝, 해가 비추는 기분이어서 글씨를 적다말고 고개를 쳐들어 그를 바라보니 눈이 제법 따뜻하게 웃고 있었지요. 그의 어깨너머로는 젊은 교도관이 앉아서 기록하던 책상 앞 자리가 비어 있었구요. 나와 주임과의 접견은 형식상 이미 끝났던 거예요. 내가 영치품 신청서를 다 적어 그에게 내밀자 그는 아직은 일어나지 않고 말을 꺼냈습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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