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이번에는 경비함까지

  • 입력 1999년 8월 9일 19시 21분


울릉도에 갔던 한 청와대 비서관의 긴급 귀경을 위해 작전중인 경비함정이 동원되는 등 법석을 떨었다. 그것도 무슨 엄청난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니고 대통령 일정과 관련된 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귀경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이 비서관은 2급비서관이다. 청와대 비서관의 위세가 어떤 것인지 실감나게 한다.

▽사건의 ‘주역’인 조은희문화관광비서관(41)은 자신이 경비함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다. 우연히 피항해 있는 경비함을 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울릉경찰서장은 6일 밤 동해해양경찰서상황실로5차례나경비함 지원요청을 했음이 확인되었다. 물론 조비서관의 직접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조비서관은 청와대 위세를 빌려 울릉도 서방3마일 근해에서 경비중이던 506함을 불러 타고 묵호까지 왔던 것이다.

▽우선 경비함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을 둘러대는 조비서관의 자세가 떳떳하지 못하다. 작전중이던 경비함까지 내준 경찰의 복무자세는 더욱 한심하다. 조비서관이 참석해야 할 청와대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해를 지키는 임무까지 포기해야할 정도였는지 의문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청와대측은 조비서관을 태워준 506함장에게 고맙다는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권력주변에서 자행되는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현 정부는 공직쇄신을 어느정권보다 강조해 왔다. 그러나 공직을 봉사하는 자리가 아닌, 권력을 누리는 자리로 인식하는 한 쇄신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인식때문에 출장이나 시찰에 소방헬기나 구급헬기를 이용하는 엉뚱한 고위 공직자도 있었다. 공직을 무슨 특권처럼 생각하는 한 부당한 권력행사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다. 이번 조비서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경비함을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 그 자체가 바로 잘못의 근원이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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