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배인준/「국가人材풀」도 좋다만…

  • 입력 1999년 7월 20일 18시 41분


인사가 만사라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인사는 자주 망사(亡事)라는 항간의 개탄을 낳곤 했다. 무대를 응시하는 객석의 눈에는 아무래도 함량미달로 보이는 가신(家臣)이다, 김현철(金賢哲)맨이다 하는 사람들에게 파묻히지만 않았어도 그런 지경엔 이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아들 현철씨를 소통령(小統領)으로 키운 것이 망사의 극치였다. YS의 ‘망사 인사’가 그의 불행을 넘어 국민과 나라의 불행을 불렀다는 사실이 지금도 우리를 화나게 한다.

‘인사에 만점이 어디 있나. 50점만 넘으면 성공한 인사지.’ 많은 조직의 인사권자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한다. 인사라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라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핵심적 인사에서 결정적 실패를 하게 되면 안팎으로 깊은 상처를 남기기 십상이다. 현정부의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 파동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정부에서는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인사가 이어진다. 장차관이나 권력기관 간부의 인사쯤 되면 객석에서도 저게 무슨 뜻이지, 왜 저런 돌을 놓지 하고 요모조모 뜯어보게 된다(따지자면 민주주의 국가에선 객석이 곧 주인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고위급의 인사만 중요한 건 아니다. 객석에선 일일이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중하위급 공무원 인사도 각각 그 나름대로의 무게를 갖는다. 때로는 부처 과장이나 사무관 몇사람이 장차관보다 더 실질적으로 관기(官紀)를 좌우하거나 민생에 영향을 미친다.適材適所는 어디에? 정부 인사와 관련해 중앙인사위원회의 최근 움직임이 관심을 끈다.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5월에 출범한 중앙인사위는 며칠전 공무원 인사개혁을 겨냥한 ‘국가인재 풀 구축’ 계획을 밝혔다. 행정부의 적재적소(適材適所) 인사에 도움이 되도록 공직과 민간 각계 주요인물 4만여명의 신상자료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연말부터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 총리 장관 등이 어떤 자리에사람이필요하다면곧바로 후보자 신상정보를 제시하겠다는 얘기다. 기업에서 활발해지고 있는 헤드헌팅(고급인재 찾기)의 정부판이라고나 할까.

그러한 국가인재 풀 발상 자체는 개혁지향적이고 순수한 것 같다. 지연 학연 혈연 등 연고와 정실(情實)이 아닌 능력과 실적을 잣대로 공무원 인사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목적의식에 공감이 간다. 이 국가인재 DB가 객관적 기준과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구축돼 잘만 활용되면 행정부 인사개방을 촉진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亡事인사’ 반복말길 하지만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공직 인사의 일그러진 현실은 국가인재 풀 계획을 냉소하는 것만 같다. 일부 부처와 산하기관들에는 인사 낙하산이 줄줄이 착지(着地)했다. 파워맨 장차관이 ‘내 사람’ 쓰겠다며 화끈하게 봐줘서 끌어온 2류들, 여당실력자다 중진의원이다 하는 정치인들이 밀어넣은 3류들….

몇몇 부처와 유관기관들에서는 속이 들여다 보이는 연고 정실인사에 ‘해도 너무 한다’는 탄식과 분노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새어 나온다. 자질과 능력이 의심되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고 떵떵거리니 관료사회의 팀워크도 사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예 이 정권 5년을 ‘잃어버린 5년’으로 체념해버린 공무원도 있다.

야당하던 의원님 따라다니다 하루아침에 중앙부처 의자 하나 얻어걸친 어떤 신관(新官)은 업무 익힐 생각은 않고 허구한 날 팔자를 고쳐준 어르신 찾아가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처에선 이런 것도 합니다”고 보고하기 바쁘다. 그러면서 “어차피 정권 바뀌면 내 팔자도 또 바뀔 텐데 뭐…”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국가인재 DB를 아무리 잘 구축한들 내 사람 심기, 고향사람 봐주기에 여념이 없는 인사권자나 제청권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혜란(朱惠蘭)씨가 경기도 인사에 개입해 주변 인물을 지사 비서자리에 앉히고 형부의 전비서를 도청 간부로 밀어넣었다고 해서 구설을 낳았지만 그런게 어디 주씨만의 경우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큰 권력이나 작은 권력이나 각자의 지분만큼 한바탕 인사잔치 벌이기에 바쁘다면 총체적 ‘망사 인사’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국가인재 DB 구축은 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의 헛수고와 예산낭비에 그칠 뿐일 테고….

배인준<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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