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최고의 발명]단백질의 보고 - 콩

  • 입력 1999년 7월 18일 19시 45분


로마제국이 멸망한 기원후 5세기부터 서기 999년까지의 기간은 정말 ‘암흑 시대’라는 말이 걸맞은 시기였다. 야만족의 침입이 계속 이어지면서 유럽의 도시들은 황폐화했고, 잘 닦아놓았던 길들은 잡초 속에 묻혀버렸다. 또 광산 채굴과 채석 기술 등 중요한 기술들이 사라져버렸다.

당연히 사람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고 결핵 나병 흑사병 등 무서운 전염병까지 돌아 인구는 점점 줄어만 갔다. 당시 인구가 얼마였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7세기의 유럽 인구는 약 1400만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땅을 경작할 일손도 줄어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더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그런데 서기 1000년이 다가오면서 유럽의 인구는 증가하기 시작했다. 어떤 학자들은 950년에 유럽 인구가 2200만이었다고 하고, 다른 학자들은 1000년에 유럽 인구가 4200만이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14세기가 됐을 때 유럽의 인구는 6000만∼7000만이었다.

이처럼 인구가 늘어난 것은 샤를마뉴의 개혁, 독일 제국의 성립, 도시의 부활 등으로 인해 경제 상황이 개선된 덕분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무엇인가에 의해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노동조건이 나아졌기 때문에 정치적 개혁과 도시의 번영이 가능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중세의 가난한 사람들은 집에서 닭을 키우거나 밀렵을 하지 않는 이상 고기를 먹지 못했다. 이들은 형편없는 식사 때문에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쉽게 병이 들었고 농사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10세기경 콩과 식물 경작법이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유럽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콩은 식물성 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식품이므로 농부들은 더 튼튼해져서 예전보다 더 오래 살게 되었고 그 결과 더 많은 아이들을 낳아 인구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발명품이나 발견이 복잡한 기계와 관련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럽인들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유럽인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것은 사실 콩 덕분이다. 콩이 없었다면 유럽 인구는 몇 세기만에 두 배로 늘어날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오늘날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도 수억을 헤아릴 정도로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 일부는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편 다른 대륙에서는 어땠을까? 나는 다른 대륙의 콩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중국산 비단과 인도산 향료가 없었더라면 유럽의 상업 역사가 상당히 달라졌을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산 콩이 없었더라면 다른 대륙의 역사도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난 1000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텔레비전이나 마이크로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암흑시대의 역사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필자:움베르토 에코〓볼로냐대의 기호학 교수이자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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