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부른다/강원]소설가 이순원씨가 말하는 내고향

  • 입력 1999년 7월 18일 18시 39분


강원도는 넓다. 깊은 산과 깊은 물과 깊고 푸른 바다를 다 가진 땅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 길이 바로 경춘가도다. 그 경춘가도를 따라 춘천으로 가서, 이 곳에서 양구며 화천이며 인제로 이어지는 산 위의 호숫길을 따라가본 적이 있는가? 인제에 가면 상남과 현리 인제를 잇는 국도를 따라 흐르는 내린천을 꼭 둘러보기 바란다. 그 물길은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남에서 북으로 물길을 잡고 흐르는 강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한 폭의 그림같다고 말할 때 나는 늘 그 첫 자리에 내린천을 놓는다. 그 내린천 만큼이나 자랑하고 싶은 또 하나의 강이 영월 동강이다. 예전에는 뗏목이 흘렀고 지금은 댐을 막네, 못 막네 실랑이를 하고 있는 곳. 그곳의 어라연계곡을 그대가 이 기회에 둘러본다면 이제까지 댐에 대해 남의 일처럼 무관심했던 사람도 이런 곳에 댐을 막으면 발전과 유용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자연이나 후손에 큰 죄를 짓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어디 강뿐인가. 오대산이나 설악산은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들이 더 잘 아는 명산들. 나는 단지 그곳의 길을 말하련다. 월정사 아래의 전나무 숲길을 걸어보았는가? 지난해의 낙엽이 양탄자처럼 한층 깔려 한여름에도 가을같은 느낌이 드는 곳. 그곳을 가족끼리, 연인끼리 손을 잡고 걸으면 마주 잡은 손 안에 작은 우주 하나 그냥 들어온다. 과장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곳의 아름드리 전나무들을 두 팔로 마주 안아 보라. 땅에 뿌리를 박아 지기를 돋운 천년의 삶이 그대로 가슴 안으로 들어온다.

산이 좋으면 물이 좋은 것도 당연한 이치. 오색약수 송천약수 방아다리약수, 어디 그렇게 이름이 정해진 약수뿐이겠는가. 깊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마다 수 백년 묵은 산삼들이 수두룩이 썩어 향기를 더하는데….

그 산과 물을 넘어 해안으로 가볼까? 내륙으로부터 바다를 지키는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그 큰 영(嶺)들을 넘어서 백담사 앞을 지나 진부령을 넘으면 간성, 미시령을 넘으면 산처녀의 뒷모습같은 울산바위의 뒷자태, 한계령을 넘으면 양양과 낙산, 그 한계령의 중간길 은비령(한계령에서 가리산 아래의 필례약수로 가는 이 고갯길은 너무도 깊고 깊어 시간조차 멎는 곳이다), 푸른 동해에서 홍천으로 바로 나가는 구룡령, 오대산에서 소금강을 지나 연곡, 주문진으로 나가는 진고개, 그리고 대관령. 그 영들을 넘는 순간 그댄 아마 산 위에서도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말 것이다.

바다는 그렇게 영을 넘어가는 것말고도 또 한 길이 있다. 청량리에서 밤기차를 타거나 남쪽에서 7번국도를 따라 올라오는 그 길. 밤기차는 정확하게 새벽에 정동진에 닿고, 그 시간에 맞추어 서울의 가장 동쪽 정동에서 붉은 아침해가 그대 가슴을 향해 떠오른다. 어디 정동진 뿐인가. 경포대의 일출, 낙산 의상대에서 솔잎 사이로, 가지 사이로 바라보는 일출의 맛은 또 어떠한가? 어디에서 바라보든 그날 그 하루의 해는 온전히 그대를 위해 떠오르는 그대의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건 걱정마라. 산자락마다, 강 어귀마다, 그리고 바다로 나가는 길목마다, 그대가 만나는 인심좋은 사람들 모두가 강원도 사람들이니까.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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