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70)

입력 1999-07-16 19:05수정 2009-09-2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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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엔 식구통으로 밥이 들어올 때마다 어쩐지 목이 메었다. 무슨 짐승 같고 세상의 밑바닥에 처박힌 느낌이 들고 먹고 살아내야 하는 일이 아득하고 지겨웠다.

야아, 운동시간이다. 밥을 먹고 식기를 닦고 잡수를 받고 쓰레기를 비워내고 방을 깨끗이 걸레질 하고나면 나는 나갈 준비를 갖추고 운동 담당이 오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귀에 익은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답답했지요? 운동 나갑시다. 철커덕, 철문이 열리고 복도가 무슨 고급 호텔의 로비처럼 넓고 길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동 밖으로 나서면 날씨는 쌩하니 차갑고 산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귓전을 날카롭게 스치며 불어온다. 일반수들이 쓰는 너른 운동장에는 공장 출역수들이 갖가지 운동을 하는 중이다. 팬티 바람으로 나란히 짝을 지어 몇 바퀴씩 돌고 있는 사람, 수평틀이나 철봉대에 매달린 사람, 무리를 지어 족구나 땅 탁구를 치는 사람들, 배구를 하는 무리, 찜푸를 하는 무리, 그냥 양지쪽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무리, 그리고 고참과 왈왈구찌들은 점잖게 고급 운동복을 입고 라켓을 들고 공 줍는 아이들까지 거느리고 테니스를 친다. 나는 철창으로 가려진 통로를 지나 그 앞을 지나쳐서 사동과 사동 사이의 빈터로 간다. 전에는 정치범 전용의 운동장이 있었지만 누구 배가 아팠는지 그 자리에 강당을 지었다.

다른 곳으로 이감 가서도 정치범들에게 너른 운동장이 허용된 곳은 없었다. 구치소에서는 저 유명한 벤담의 일망 감시시설을 본뜬 원형 칸막이가 운동 공간이었다. 이 시설물은 수인 각자가 보여지기만할뿐 남을 볼 수는 없게 되어 있다. 벤담의 감옥은 원래 베르사이유의 동물원 시설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하는데. 가장 바깥쪽에 원형의 높고 긴 담을 둘러치고 케이크나 피자를 자르듯이 부채꼴 모양으로 칸을 나누었다. 각 칸막이마다 문이 달려 있어서 수인을 안으로 밀어넣고 문을 닫으면 그는 그냥 부채꼴의 시멘트 담 속에 혼자 갇힌다. 원형의 탑이 중앙에 있고 이것은 이층으로 되어 있다. 바깥 테두리 보다 작은 원형 본체로 들어서면 각 칸막이로 들어가는 문이 마치 비행접시의 문처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으며 문에는 번호가 붙어 있다. 몇 번 공간으로 들어가라고 하면 수인은 문을 열고 부채꼴의 공간으로 나가게 된다. 감시자는 계단을 통하여 위로 올라가 사방의 칸막이를 위에서 동시에 관찰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감시자가 우리를 칸막이에 넣어 두고 정말로 충실히 우리를 관찰하기 위해서 탑의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돌아다니거나 하는 꼴을 본적이 없다. 그는 어딘가 보이지 않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동료와 잡담을 하고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고개를 쭈욱 빼거나 돌려서 어느 칸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살필 수가 있다. 시설은 참으로 상징적이었다. 본능을 실험하는 연구실의 쥐새끼들처럼 우리들의 맴도는 움직임은 적나라하다.

어떤 이는 칸막이 너머에서 혼자 씨부렁거리며 공을 시멘트 담에다 차고 부딪쳐 오면 되차고를 반복한다. 어떤 이는 그냥 좁은 공간을 숫자를 헤아리며 돈다. 또 어떤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담 너머로 보이는 산모퉁이나 하늘을 올려다 본다. 나는 주로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 하늘에는 구름과 또는 새가 날아갔다. 그리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생긴 여객기가 같은 항로를 날아갔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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