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이윤학「저수지」

  • 입력 1999년 7월 11일 19시 32분


하루종일,

내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그 저수지가 나오네

내 눈 속에 오리떼가 헤매고 있네

내 머릿속엔 손바닥만한 고기들이

바닥에서 무겁게 헤엄치고 있네

물결들만 없었다면, 나는 그것이

한없이 깊은 거울인 줄 알았을 거네

세상에, 속까지 다 보여주는 거울이 있다고

믿었을 거네

거꾸로 박혀 있는 어두운 산들이

들을 받아먹고 괴로워하는 저녁의 저수지

바닥까지 간 들은 상처와 같아

곧 진흙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섞이게 되네

―시집‘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문학과 지성사)에서

물결들만 없었다면 깊은 거울인줄 알았을 거라는 그 저수지… 속까지 다 보여주는 그런 저수지는 이 지상에 존재하는 걸까. 나는 그런 저수지가 되고 싶네. 바닥까지 내려온 상처의 들을 진흙이 되게 하는 그런 저수지가.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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