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밀레니엄 베스트]세익스피어의「햄릿」

  • 입력 1999년 7월 4일 18시 37분


지난 1000년간 씌어진 시(詩)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은 무엇인가. 필자가 이 질문의 대답으로 ‘햄릿’을 고른 것은 결코 서정시에 대한 배신행위가 아니다. ‘햄릿’은 극적인 동시에 서정적인 극시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표현대로 ‘육욕적이고, 피투성이의,/…. 무심한 살육’이 햄릿의 기본 플롯을 이루고 있지만 이 작품의 서정적인 구조는 극적인 행위 위에 반짝이는 거미줄처럼 비극적으로 드리워져 있는 햄릿의 고귀한 의식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극적인 햄릿은 살인에 의해 자극을 받고 화를 내며 흥분하지만 서정적인 햄릿은 모든 죽음에 감동받는다.

햄릿이 믿는 것은 죽음뿐이다. 그는 이 작품이 씌어진 당시를 지배한 이념의 일부였던 기독교적 내세를 믿지 않는다. 햄릿이 고민하는 단 하나의 문제는 ‘사느냐 죽느냐’뿐이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과 살인은 그를 불안하게 하는 두가지 요소들이다. 죽음이 살인을 통해 찾아오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햄릿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죽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체슬라브 밀로즈는 유럽문화에서 햄릿의 시기가 ‘조잡한 미신으로부터 자유롭고, 우아하며, 문학과 예술을 장려하는 귀족계급의 비주류’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였다고 정의한다. 이 ‘조잡한 미신’은 햄릿 아버지의 유령을 여전히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햄릿은 유령을 보고난 후에도 죽음의 잠속으로 찾아오는 나쁜 꿈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에게 남아 있던 믿음의 잔해는 신랄한 대학교육에 의해 분쇄되어버렸다. 햄릿은 기독교적 위안을 거부함으로써 서유럽의 지난 1000년 역사중에서 철학적 전환점을 나타낸다. 종교적 권위가 붕괴된 자리는 사회적 혁명에 의해 메워진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희곡들 중에서 단 한사람의 서정적 의식에 의해 지배되는 작품은 햄릿뿐이다. 맥베스 부부, 핼과 폴스타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모두 두 사람이고, 데스데모나, 오셀로, 이아고는 3인조를 이룬다. 리어왕은 둘씩 셋씩짝을짓는등장 인물들로 가득차있다.그러나 햄릿에게는형제도,아내도,함께 복수에 동참하는 부하도 없다.

그래서 햄릿은 언제나 중심에 있다. 다른 등장인물들은 모두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의 빛나는 언어를 자극하고, 거부하고, 가로막기 위해 존재한다. 햄릿의 연출가들은 이 구도를 마지막 장면에 반영한다. 햄릿이 중앙에서 쓰러지고 그의 주위에 클로디어스, 거트루드의 시체가 있다. 그리고 무대의 양쪽 날개부분에는 이 극에 등장하는 다른 죽은 사람들이 숨어 있다. 포틴브라스는 햄릿의 아버지에게 살해당했고, 햄릿의 아버지는 클로디어스에게 살해당했으며, 폴로니우스, 로젠크란츠, 길덴스턴은 모두 햄릿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오필리어는 자살했다.

햄릿은 기독교 이후의 시대를 나타내는 빼어난 시다. 이 작품은 구원을 말하는 기독교적인 플롯과 왕권이 신에게서 온 것이라는 기독교적 믿음에 내포된 정치적 위계질서를 거부한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썼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찾아낸 자신의 미래를 발견했다.”

▽필자:헬렌 벤들러〓하버드대학 영문과 교수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