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찬근/시민운동도 세계화 적극 나서야

  • 입력 1999년 7월 1일 23시 13분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속에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우물안 개구리의 한계를 노정했다. 초국적 투기자본의 광포성으로 인해 위기가 발생한 측면을 배제할 수 없고 IMF와 미국의 편파적 개입으로 인해 위기사태가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이를 외면했다. 종래의 타성에 젖어 내부적 결함의 치유에만 매달렸다.

국경없는 자본의 운동 앞에서 각국 정부는 운신의 폭을 상실해 이제 시장의 실패를 통제하는 몫은 시민사회운동에 크게 기댈 수 밖에 없다. 실물경제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환율과 주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국적 투기자본의 위력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유사한 형태의 외환 금융위기가 빈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IMF는 금융자본의 독과점적 이권구조를 대변하면서 현행 국제금융질서를 개편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독일 쾰른에서 열린 G8정상회담에서는 헤지펀드에 대한 실효성있는 규제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오히려 IMF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는 등 지극히 시대역행적인 방안이 채택됐다. 필자는 마침 대구라운드 한국위원회가 파견한 대표단의 일원으로 쾰른과 파리에서 연이어 개최된 세계화의 대안 모임에 참석했다. 파리 비정부기구(NGO) 대회에는 프랑스를 제외한 세계 80여개국에서 무려 700여명의 시민사회단체 리더들이 참가했다.

“시장의 신(神)들을 무장해제하라.” “우리에겐 세계화의 대안이 있다.” “개혁은 결코 불가능이 아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유럽 북미에서 모여든 시민사회운동가들은 인종 문화 종교 성별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이렇게 연대를 다졌다.

이번 대회를 통해 프랑스는 전세계 시민사회운동에서의 리더십을 확보했다. 영국과 미국이 주도해온 부채탕감 운동에 대해 짜증을 내던 제삼세계의 대안세력들은 프랑스의 안마당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고 자리를 만들어준 프랑스에 대해 마음의 빚을 졌다. 적절하게 타이밍을 잡아 세계의 리더십을 장악하는 프랑스의 정치감각은 뛰어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 프랑스 정부가 이번 행사를 지원했다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물밑에서 주최측과 충분한 교감이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프랑스는 선진국 중에서 가장 금융세계화와 자본자유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나라다. 앵글로 색슨형의 증권자본주의가 광포하게 습격해올 경우 자칫 외국 기관투자가에게 자국 주력기업들의 경영권을 뺏길 수 있는 점을 프랑스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자국 NGO를 앞세워 제삼세계를 등에 업고 정치적 발언권을 확대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않았을까. 최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김대중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투기자본 문제에 대한 공동대처를 제안하기도 했다.

외환금융위기가 말해주듯이 우리는 결코 튼튼하지 못한 배를 타고 폭풍이 휘몰아치는 세계화의 거센 바다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도 적극적으로 세계화를 추구해 세계시민연대를 지향함으로써 정부의 제한된 외교력과 협상력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또한 이를 지원해야 한다.

이찬근 (인천대교수·대구라운드한국위훤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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